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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7/14/23 사 8-12장, “10장 남은 자” Publish on July 14,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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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57회 작성일 23-07-1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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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이사야 10장에 나오는 남은 자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원래, 남은 자란 “재난에서 살아남은 무리”나 “공동체의 미래의 생존이 달려 있는 어떤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재난과 남은 자는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죠.^^

성경에서 남은 자 사상은 구약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창세기의 노아 홍수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 요셉 이야기에서 나타납 니다. 

엘리야의 이야기에도 나오고, 아모스, 이사야, 학개, 스가랴에서는 더욱 발전되어 신약 으로 이어집니다.

신약에서 남은 자 사상은 예수님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바울을 비롯한 신약 교회를 통해 열방으로 확대되며, 계시록에서 144,000의 노래로 꽃을 피웁니다.

 

9-10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교만과 범죄로 인해 심판을 선포하는 문맥입니다.

심판하는 막대기가 앗수르입니다.

하지만, 앗수르에게도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10:5)”라고 시작되는 심판이 선포됩 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앗수르를 사용하시지만, 앗수르가 교만 하여지니까, 앗수르도 심판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의 중심이 사람이나 권력에 있지 않고, 언약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치시는 이유도 언약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서입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 10: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사 10: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 10: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여기에서 주목할 단어가 “남은 자”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남은 자”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사야 7장에서도 남은 자가 표현되었는데요. 

이사야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스알야숩”이라고 지었습니다.

(스알야숩은 “스알(셰아르, rest, remnant)+야(미래형)+숩(슈브,return)”가 합성된 단어로,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란 뜻입니다)

그런 문맥에서, 10장에서도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예언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은 자는 어떤 자입니까? 

남은 자는 자기를 친자(앗수르)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다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것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남겨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만 진실히 의지하는 자들 입니다. 

이러한 자는 다수입니까? 소수입니까? 

소수입니다. 

(즉, 대부분 사람은 남은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소수의 무리는 대중이 관심을 두지 않는 진리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자들이었습 니다. 

대다수 백성은 죄와 불신앙에 빠져 있었지만, “남은 자”들만은 신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남은 자들을 심판 속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은 자에 대한 구절을 읽으면, 대부분 자신을 남은 자라고 생각하면서 읽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은 자는 소수이기 때문이고, 남은 자가 되는 것은 인간의 권한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예측을 벗어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람 수준을 넘어서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갈 때,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자들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남은 자였습니다.

그 뒤에, 포로에서 귀환할 때도 (바벨론 땅에 남아있던 자들이 아니라)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이 남은 자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헷갈리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분명합니다.

하나님 쪽에 서는 자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당시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포로에서 귀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포로로 잡혀가던 방식도 당시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방식이었습니다.

또한, 포로에서 귀환하는 방식도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루어 졌습 니다. 

귀환할 때, 이방인 고레스 왕을 통해서 귀환했던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개만도 못한 이방인’의 손을 통해 구원한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로선 상상 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방인 고레스를 나의 목자,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사용 하셨습니다(사 44장).

(여기에서 열방을 품고 계신 하나님의 선교를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구원하는 방법도 사람의 지혜를 넘어서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세상이 예상치 못했던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찮기 그지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죽어주신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 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자를 묵상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하나님 편에 서는 자가 남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를 때, 묵상은 하나님의 언약과 새언약의 완성인 십자가에 도달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만이 구원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

남은 자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따라가는 남은 자의 삶을 살게 해 주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CZBpcidux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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