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7/23 사 20~23장, “열방에 대한 심판 3 (예루살렘 심판)”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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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7/17/23 사 20~23장, “열방에 대한 심판 3 (예루살렘 심판)” Publish on July 17,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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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52회 작성일 23-07-1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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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사 20-23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열방에 대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이스라엘(남유다,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예언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사야서는 독특하게도, 이스라엘뿐 아니라, 열방에 대해서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특별히 선택했다고, 이스라엘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였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은 아직도 이것에 대해 오해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열방에 있습니다.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이란 것은 열방에 대한 예언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I. 열방과 남유다

오늘 본문에도 열방과 남유다에 대한 예언이 뒤섞여 나옵니다.

(이 부분은 어제 언급했지만,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13장부터 열방에 대한 예언이 시작되었는데, 열방과 이스라엘의 예언이 섞여 나옵니다.

13장에서 바벨론, 14장 초반에는 이스라엘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14-16장에는 앗수르와 블레셋, 모압이 나오고, 17장은 다메섹과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같이 나오고, 18~19장은 애굽과 구스의 예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도 열방과 이스라엘의 예언이 섞여 나옵니다.

20장은 다시 이스라엘에 이사야가 벗은 몸의 예언을 합니다.


21장에서 열방인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해 예언이 나옵니다.

“(사 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사 21: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두마는 에돔 주변 아라비아 사막 지역입니다.

이스마엘의 여섯 째 아들의 후손들입니다(창 25:14).

“(사 21:13)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22장은 예루살렘(환상 골짜기)에 대해 예언합니다.

“(사 22:1)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환상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운말 성경은 “(사 22:1) 이것은 ‘환상의 골짜기’ 곧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말씀 이다…….”라고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사 22:15)...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셉나는 당시에 남유다 왕국의 국고와 왕궁에 대한 책임을 맡은 자, 즉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리고 23장은 다시 열방인 두로에 대해 심판을 예언합니다.

“(사 23:1) 두로에 관한 경고라.”

두로는 고대의 페니키아, 현대의 레바논 지역입니다.

 

처음엔, 왔다 갔다 하는 것이 unorganized 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따로 구분해서 말씀하시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이스라엘에 대해 나오고, 그다음에 열방들에 대해 나오면, 구조도 깔끔하고 읽기도 좋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묵상하면서 어제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이스라엘과 열방을 구분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열방을 구분하시지 않고, 같은 선상에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는 이스라엘과 열방이 같이 품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23:15-16에는 두로가 심판받았다가 70년 만에 회복되는 예언이 나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70년 만에 포로에서 귀환하듯이 말입니다.

“(사 23: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사 23:17)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로는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들을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 3: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이스라엘이 포로귀환한 뒤에 성전을 재건하는데요.

이때 두로와 시돈을 통해 백향목을 공급받습니다.

이방인이 가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도 성전 재건에 동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방을 품고 계신 모습을 여기에서도 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단지 교회의 여러 활동 중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이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탄생의 기초이며, 존재 목적입니다.


II. 예루살렘 심판(22장)

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 예언되는 중에, 22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시끌벅적했고, 흥청망청 즐기고 있습니다(2절).

왜 그들이 그랬는가를 보면, 과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침공을 막아주시고, 그들은 위기에서 구원을 얻는 기적과 같은 체험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혜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해야 했습니다.

그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뤄진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자신들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했 습니다.


결국 이들도 열국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앗수르와 바벨론을 이끌고 오실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히 포위되고, 결국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날, 그곳에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소란과 공포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에 나오는 비극이 펼쳐질 것입니다.


심판받을 남유다를 바라보는 이사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사 22:4) 이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이것은 단지 이사야 개인의 심정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악된 자식에게 매질을 해서라도 바른 길로 되돌리려는 아버지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면서도, 눈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식을 훈육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범죄와 하나님을 떠난 모습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열방은 하나님을 모르니 범죄한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남유다는 아무런 변명도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도 범죄하는 자들은 더 심하게 심판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도 알고, 은혜도 체험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일까요?

첫째, 영적인 교만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둘째, 신앙은 현재형입니다. 과거에 은혜 받았다는 것은 별로 소용없습니다.

오늘 은혜 받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주님,

저도 과거에 만족하지 말게 하시고, 과거가 현재인양 착각하지 말게 하소서.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엎드리고,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 하며 살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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