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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7/20/23 사 30-32장, “사 32장 성령이 임하는 메시야의 나라” Publish on July 20,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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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70회 작성일 23-07-2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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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 묵상하려는 본문은 이사야 32장에 나오는 메시아 예언입니다.


지금까지 이사야서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이스라엘과 열방이 저지르고 있는 죄들을 지적하고, 그 죄로 인해 그들이 혹독한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라 했습니다.

그 증거중 하나가 심판의 예언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복과 구원을 주신다는 예언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복의 핵심은 “메시야”입니다. 

그동안 이사야는 몇 번에 걸쳐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앞으로도 사 40, 43, 53, 61장 등에서 여러 번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다시 나옵니다.

“(사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통치할 한 왕.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권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공의의 나라는 하나님이 늘 원하시던 나라입니다.

시편에서도 “(시 99:4) 왕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라.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야곱 중에서 공과 의를 행하시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왕이 의로 통치하면, 그 아래 신하들도 자연히 공평으로 정사를 볼 것입니다.


이 왕은 일차적으로는 종교개혁을 하여 바른 신앙을 세운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은 인간 왕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온전한 변화를 이루진 못했잖아요.

그러므로 이 왕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통해 궁극적인 회복이 임할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의의 왕인 메시야가 의로 통치하면 어떻게 되는지, 2절 이후에 비유로 묘사합니다. 

(여러 가지 묘사가 있지만, 오늘은 피난과 안전이란 관점에 집중해서 묵상하겠습니다.)


1. 불안전한 세상

“(사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이 비유들은 모두 안전과 안식을 묘사하는 것들입니다.

18절에선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최대 과제는 앗수르였습니다.

당시에 앗수르는 당대 최강이었습니다. 

너무나 잔인한 나라였고, 앗수르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앗수르 앞에 세상 나라들이 다 망하고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안전한 장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스라엘도 어디론가 피하길 원했습니다.

안전을 원했습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애굽이었습니다.

애굽은 전통적으로 강대국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 같은 존재일 뿐이었습니다(왕하 18, 사 36).

상한 갈대에 의지하면 손을 다치게 되듯이, 애굽에 의지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의의 왕이 안전한 처소를 마련해 주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를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는지 돌아봅니다.

저는 집에 있을 때, 교회에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불완전합니다.

“불안정위에 세워진 안정”임을 보게 됩니다.

이 땅의 것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땅이란 것 자체가 불안정하잖아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이 겉으로 보기엔 단단하고 안정되어 보이지만, 실은 땅속으로 내려가면 액체라고 합니다.

조금 과장하면, 마치 물위에 큰 널빤지 띄워놓은 것과 비슷한 거지요. 


2. 진정한 안전

그럼, 진정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15절에 눈이 갑니다.

“(사 32:15)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마침내 성령이 임하게 되는데, 성령이 임하면 아무것도 경작할 수 없었던 황무한 광야가 곡식을 경작하는 기름진 땅처럼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에 곡식을 경작하던 밭은 온갖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서 숲처럼 우거질 것입니다. 또는 곡식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곡창지대가 될 것입니다.

엄청난 업그레이드, 분명한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독특한 점은 이사야가 메시야 예언 뒤에 성령 강림을 예언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메시야의 품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의 품에 거하는 방법은 성령 충만이란 것이지요. 


실제로 예수님 오신 뒤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마가 다락방에 성령에 성령이 부어지기 전에, 제자들은 잡힐까봐 겁내며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강림 후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락방에 숨어 있어도 불안했지만, 성령이 임하니까 공회원들 앞에서도 담대히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전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안전한 처소도 성령을 통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성령충만 받고, 주 품에 거할 때, 가장 안전함을 고백합니다.

그곳에서 광풍과 폭우를 피하고, 광야에서 생수와 그늘을 경험하게 됨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주님 품안에서 성령이 가득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a04-dNHU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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