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23 잠 17~21장, “잠 18장 견고한 망대” Publish on July 05,2023 | 관리자
페이지 정보

본문
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잠언 18장 10절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하려 합니다.
“(잠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솔로몬은 건축을 많이 한 왕입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상 9장에 보면, 솔로몬이 전국에 국고성과 병거성과 마병의 성을 건축했다고 나옵니다.
예전에 인터넷을 통해 고고학자들이 하솔성을 발굴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솔은 갈릴리호수 북쪽에 있는 군사 요충지입니다.
하솔성은 솔로몬이 하솔 지역에 건축한 병거성입니다.
그 규모가 엄청나고, 구조도 당시로선 최신 구조였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가진 건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10절의 잠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서 망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망대는 감시 타워를 말하는 것입니다.
망대는 주로 성벽에서 붙어있는데, 성에서 가장 튼튼하고 높은 건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 때는 수비의 요충지가 됩니다.
평소엔, 망대에서 파수꾼이 밤새도록 성을 지킵니다.
이렇게 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은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호와가 어떤 망대인지 묵상해 보려 합니다.
I. 돈은 견고한 망대가 아닙니다.
진짜를 찾는 좋은 방법은 가짜부터 가려내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진짜 망대가 아닌 것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잠 18: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
사람들은 재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세상 살면서 돈이면 안되는 게 별로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에 의지합니다.
돈이 자기를 보호해 준다고 여깁니다.
돈을 자신의 견고한 성이요, 높은 성벽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부자는 그 돈을 믿고 마음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교만해지면, 망하기 십상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일 뿐입니다.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그러므로 돈은 견고한 성이 아닙니다.
돈이 겉으론 위대해 보이고,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견고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가 물려준 유산 때문에 형제간에 관계가 깨지고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돈 버는 것에 집중하다가 자녀 교육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면서 돈이 꼭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돈에 너무 의지하진 말아야겠습니다.
돈이 없으면 못살 것처럼 불안해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문제는 언행일치입니다.
저도 입술로는 하나님이 다 먹이고 입혀 주실 줄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은 돈이 먹여주고 입혀준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II.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입니다.
“(잠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솔로몬은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성이요, 망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망대라는 것은 ‘하나님이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불안과 염려에 대해 생각하면, 야곱의 돌베개가 떠오릅니다.
야곱이 에서의 칼을 피해서 하란으로 도망갈 때, 벧엘 벌판에서 돌 베게 하면서 잠을 잤잖아요.
막막하고, 불안한 밤이었습니다.
그 밤에 형이 쫓아와서 죽일까 봐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밤에 꿈에 나타나서 말씀합니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안한 야곱의 인생에 임재하셔서, 그와 동행해 주셨고,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잠언의 방식으로 말하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이동식 망대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
주님이 망대인 줄 알고 달려가는 것이 참 지혜임을 다시 생각합니다,
주님이 오늘 저에게도 이런 망대가 되어 주소서.
III. 주님께 달려가야겠습니다.
“(잠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달려가서”라는 단어를 더 깊이 생각해 봅니다.
“달린다”라는 동사는 그저 여유롭게, 천천히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빠르게 달린다는 표현입니다.
천천히 걷다가 달리다가 하는 수준이 아니라, 100m 달리기하듯 빨리 달리는 것입니다.
적군이 기드온에게 패해서 급히 도망갈 때,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갈 때, “달려서” 도망갔습니다.
또, 전령이 다윗 왕에게 압살롬이 죽은 소식을 전하려고 할 때도 “달려갔습니다.”
저는 언제 달리는지 돌아봅니다.
약속시간 늦었을 땐 빨리 달리곤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 나아갈 땐 왜 이리 핑계가 많은지….
주님,
저도 주님께 달려가게 해 주세요.
달려가 주의 품에 안기기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BCavdWwjeI
- 이전글07/06/23 잠 22~26장, “의인의 삶” 23.07.10
- 다음글07/04/23 잠 11~16장, “12장 뿌리 깊은 신앙” 23.07.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