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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7/08/23 전 1-6장, “헛됨” Publish on July 10,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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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55회 작성일 23-07-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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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는 전도서를 두 번에 걸쳐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은 전반부 (1-6장)를 묵상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잠언, 전도서, 아가서는 솔로몬 왕이 지었습니다.

전도서에 솔로몬이 지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고, 자신을 전도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다윗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솔로몬이란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1:1, 12).


세 권중 저작 순서로 따진다면, 전도서가 가장 후대입니다.

전도서를 읽으실 때, 노년의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읽으시면, 내용과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전도서에는 두 가지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 하나는 1장의 “헛되다”는 구절이고.

◆ 다른 하나는 12장의 “창조주를 기억하고, 경외하고, 명령을 지키라”는 구절입니다. 

전도서의 전반부(1:1-6:9)는 “인생의 수고와 애씀이 헛되다” 합니다. 

그것들은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후반부(6:10-12:14)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이제 전반부를 좀 더 집중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반부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헛되다는 단어는 전도서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표현인데요. 

전도서 전체에 37번이나 나옵니다.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2절은 짧은 문장 안에 헛되다는 표현을 5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헛되다는 말은 “후하고 부는 숨”이나 “안개”를 뜻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손에 잡히지 않고, 텅 비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헛되다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헤벨]인데요. 

가인의 아우 아벨의 이름이 히브리어 발음으로 [헤벨]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둘째 아들 이름을 [헤벨(아벨, 헛됨)]이라 지었습니다.


솔로몬이 헛되다고 하는 것들을 살펴보면요.

지식주의의 길 (1:12-18), 쾌락주의의 길 (2:1-11), 물질주의의 길 (2:18-26)같은 세속적인 길들이 다 헛되다 합니다.

그래서 1:14에선 모든 게 다 헛되다고 다시 확언합니다.

(전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세상에 새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새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해아래 새것은 전혀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새로운 것을 가지는 유일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진정한 새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 될 때만 가능합니다.

그럼, 나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까?

예, 저는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여러 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나요? 

…. (ㅠㅠ)

늘 이 질문엔 자신이 없습니다.

왜 저는 여전히 과거와 비슷한 삶을 사는 걸까요?

왜 여전히 과거의 길을 걷고, 과거에 추구하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묵상을 하면서 시 121편이 떠오릅니다.

마치 시편 121편처럼, 성전을 향해 올라가다가도 도움을 찾기 위해 다른 산들을 향해 두리번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솔로몬은 해아래 모든 일들이 다 헛되다 했잖아요.

그런데, 자꾸 제가 그 헛됨에 눈을 돌리고, 유혹되고, 굴복하기 때문에, 과거의 헛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절망하진 않습니다.

순례자도 1절에서 잠깐 두리번거리긴 했지만, 2절에서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121: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혹시 저도 오늘 또 넘어질 수도 있고, 또다시 먼 산을 두리번거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여호와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결심합니다.

이제는 “허무한데 굴복하는(롬 8:20)” 모습을 벗어 버리고, 진정한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려고,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며 살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살려고 애써야 겠습니다. 


주님, 

연약한 저를 도우소서.

세상을 헛됨을 깨닫고, 그것들을 추구하는 걸음을 멈추게 하소서.

세속에 물든 내게로부터 눈을 들게 하시고, 하늘을 바라보고,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그래서 진정한 것, 참된 것, 새 것을 추구하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PwPXxH7JIv0&t=18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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