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9/23 전 7-12장, “창조주를 기억하라.” Publish on July 10,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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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 묵상할 본문은 전도서 12장입니다.
I. “(전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자가 깨달은 인생을 지혜롭게 잘 사는 길은 “죽을 날을 생각하고, 창조자를 기억하는 것”입니다(1~2절).
‘기억한다’(또는 생각한다)는 단어는 단순히 잊었던 것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 결단과 행동을 포함하는 동사입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 압제 당하던 이스라엘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는데요(출 2:24-25),”
그동안 이스라엘을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났다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려고 일하기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셨다(삼상 1:19)”는 말도 그동안 한나를 잊었다가 기도를 듣고 다시 그녀를 기억하신 것이 아니라, 이제 한나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신다는 의미입 니다.
이처럼 전도서에서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라고 하는 말은 지금 당장 눈앞에 죽음 이나 몸이 노쇠해지는 것이 없을지라도, 창조자를 섬기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힘써 살아 가라는 권고입니다.
특히, 솔로몬은 청년의 때에 기억하라고 합니다.
늙기 전에 명심하라는 말입니다.
(솔로몬 본인은 젊은 때는 자기가 똑똑한 줄 착각하고 살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러다가, 늙어서 다시 여호와를 기억하게 되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자기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고, 젊을 때부터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말입 니다.)
[Memento mori]라는 유명한 라틴어 표현이 떠오릅니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remember that you must die)”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갑니다.
그리고 언젠간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때에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 봅니다.
이 땅에서 이렇게 사역하고, 충성했다고 말 할 것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전도서 12:1-6에 묘사한 대로, 저도 언젠가는 기억력과 총명이 흐려지게 되고, 이가 빠져 음식을 씹을 수 없으며, 눈도 흐릿해지겠지요.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지금 하나님을 기억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창조주를 적극적으로 기억해야겠습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오늘 제가 할 수 있을 것을 하고, 충성할 수 있는 대로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는 대로 헌신하며 살아야겠습니다.
II. 전도서는 이렇게 결론 맺습니다.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사람의 본분이니라”라는 의역입니다.
KJV이나 ESV도 “this is the whole duty of man.”이라고 의역했는데요.
원문에는 duty가 없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사람의 모든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에게는, “사람의 본분”이라고 하는 것보다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강력 하게 와 닿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잠 9:10).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법대로 사는 것을 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사는 의미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어디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보람을 느끼며 사는지….
하나님의 자녀라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실제로 어디에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며 살고 있는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좋은 대우, 높은 자리, 자녀들의 성공을 기뻐하며 사는지…….
여기에서,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겠다고 결론 내리면, 오늘 묵상이 끝나는 타이밍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묵상을 마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전도서는 “세상일은 다 헛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라고 했잖아요.
물론, 저도 세상일을 헛되다 고백도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도 헛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묵상을 마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 “복음의 순간”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을 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이 오신 것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나의 무능력 때문이니까요!
전능의 하나님이 저의 전적 무능력을 십자가 복음으로 해결해 주셨으니까요.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를 끝내며, 다시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제가 헛되게 추구하던 허무들의 더미와, 그 더미들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오직 십자가 안에 생명이 있고, 오직 십자가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소망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https://www.youtube.com/watch?v=kLEZoT6hB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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