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23 왕하 11-13장 “대제사장 여호야다”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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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4/11/23 왕하 11-13장 “대제사장 여호야다” Publish on April 12,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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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94회 작성일 23-04-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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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왕하 1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요시야 왕과 여호야다 대제사장 이야기입니다.

 

1. 역사적 배경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에서 예후(북 10대왕)가 반역을 일으켜서 아합 왕가를 멸망시키는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 남유다는 여호람(남 5대왕)이 아달랴(아합과 이세벨의 딸)와 결혼하여서, 남북 왕조가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뿐 아니라, 아들 아하시야(남 6대왕)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게 했습니다(대하 22:2).

즉, 북이스라엘처럼 남 유다도 바알을 숭배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달랴의 친정인 북이스라엘에서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예후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합의 아들 요람 왕(북 9대왕)을 죽이고, 아합의 부인(아달랴의 어머니) 이세벨도 죽였는데요.

그때, 북이스라엘을 방문했던 아하시야 왕(남 6대왕)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들이 죽자, 아달랴는 왕위가 손자에게 계승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손자들을 전부 죽이고, 자기가 여왕에 즉위했습니다.

남유다 7대왕이자, 유일한 여왕이 되었고, 7년간 통치했습니다.


이때 모든 왕자들이 살해되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요아스 왕자였습니다.

아하시야 왕의 누이였던 여호세바 공주가 제사장 히스기야와 결혼해서 살고 있었는데요.

여호세바가 자신의 조카(아하시야 왕의 아들)인 요아스를 몰래 숨겼습니다.

왕자들이 죽임당하는 중에, 몰래 빼돌려서 그의 유모와 함께 자기 침실에 숨겼습니다.

너무나 용기 있고, 위대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때 겨우 1살이었던 요아스는 고모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아기 요아스를 여호와의 성전에 6년간 숨겼습니다.

아기 요아스를 성전에 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적극적으로 숨겨준 것입니다.

 

아달랴가 다윗의 후손들을 싸그리 죽인 것은 너무나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윤리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왕가는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의 씨를 이어주겠다고, 다윗의 후손이 영원히 통치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달랴가 다윗의 후손을 모조리 다 죽여버린 것입니다.

지금 아달랴로 말미암아 그 언약이 깨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다윗의 족보가 끊기고 메시아가 태어나지 못할 위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6년간 아기를 몰래 키운 것은 남 유다 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보존되게 하는 놀라운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달랴의 악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일꾼을 사용하십니다. 

이번에도 공주 여호세바와 대제사장 여호야다 부부를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특히 부부가 합심할 때, 하나님의 사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보게 됩니다.

저희 부부도 이런 신앙의 부부, 사역하는 부부가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부부가 많이 생기길 소망합니다.


2. 요아스의 즉위

아달랴의 불법적인 정권은 7년 만에 막을 내립니다.

아기 요아스가 7살이 되었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가 반정을 꾀합니다.

“(왕하 11:4) 제 칠년에 여호야다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를 보이고”


여호야다는 성전 호위병들을 동원하여 아달랴를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인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실로 7년 만의 쾌거였습니다.


요즘도 어떤 일은 금새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어떤 일은 오랜 과정이 필요한 일도 있습 니다. 

그런데 긴 과정을 통과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대세가 기울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합니다.

낙심하거나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는 실망도, 낙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실하게 그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할 일을 준비했습니다. 

군사도 준비하고, 계획도 치밀하게 짰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가장 좋은 기회와 때가 되었을 때, 일을 실행했습니다.

반정은 신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성전에 있는 다윗의 창과 방패들로 성전 호위병들을 무장시켰고, 성전에서 7세의 요시아 왕자에게 대관식을 행했습니다(왕하 11:10-11).

그리고 아달랴를 처단했습니다(왕하 11:16).

 

그리고 여호야다는 남 유다에서 우상을 깨뜨리고, 언약을 회복했습니다.

“(왕하 11: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여호야다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준비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군사력이 탁월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야다의 편을 들어 주었기 때문에, 소수의 제사장 무리들이 반정에 성공하고,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저는 어떤 상황에 있는지 돌아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저는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저도 상황을 분별하고, 판단하고,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지혜를 가지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 잘 돌아보는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 그 어떤 사람도 아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와 주인 되시게 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유익되는 것을 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분별하는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또한 여호야다가 7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며,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기 때문이고, 그 언약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생각해봅니다.

저는 얼마나 하나님께 신실한지 돌아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헌신하고 있고, 무엇을 바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하게 하나님이 쓰실 때를 대비해서 준비하고 있는지도 돌아봅니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니, 저의 연약하고 게으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좀 더 진지하게 연습하고, 훈련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바울의 비유 중에 주인에게 쓰이는 그릇은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보다, 준비된 그릇이냐 아니냐로 나뉜다고 했습니다(딤후 2:21).

저도 저를 깨끗하게 하고 잘 준비하여서,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사용되기 원합니다.

 

또한 이 땅의 현실로 눈을 돌려봅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봅니다.

코비드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피폐해지는 이 땅의 상황을 보며 가슴이 답답합니다.

여호야다가 바알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갱신시켰던 것처럼, 저도 이 땅의 부흥과 영적 갱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 원합니다.

이 땅의 부흥을 위해, 영적 갱신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fqZhmk2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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