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7/23 삼상 1-3장, “한나의 기도” Publish on March 17,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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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부터 사무엘상을 읽게 됩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이면서,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사 시대를 끝내고, 단일 왕국 시대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위대한 인물이 많이 있지만, 사무엘은 흠을 찾기 어려운, 장점과 본받을 점이 가득한 인물입니다.
이런 사무엘 뒤에는 믿음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습니다.
사사기 시대에 눈물로 기도했던 한나가 있었기에, 사무엘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이야기는 아버지 엘가나와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삼상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에브라임 사람”이란 말은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어? 엘가나가 에브라임 지파인가?’ 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에브라임 사람은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역대상에 보면, 엘가나는 레위인이며, 사무엘의 아버지라고 분명하게 나옵니다(대상 6:27-28).
즉, 엘가나는 레위인으로서, 에브라임 산지에서, 혹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성막은 실로에 정착해 있었습니다.
한나는 라마다임소빔에 살면서 15mile(24km)이 떨어진 실로까지 갔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은 라마(언덕)+다임(쌍, 두개)+소빔(파수꾼들), double height of watchers)란 뜻입니다.)
남편이 실로에 있는 성막에서 봉사할 때 따라갔겠지만, 먼 길을 따라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삼상 1:9).
한나가 성막에 간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나에게는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한나에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제사장의 부인이고, 남편이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녀가 없었고, 둘째 부인의 괴롭힘이 심했습니다.
한나는 이런 고통과 상처가운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오늘 묵상은 한나가 기도하다가 사무엘이 태어나게 되는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심정을 토하여 솔직하게 기도했습니다.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때로, 한나는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삼상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하나는 때로 침묵하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한나는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솔직하게 아뢰었습니다.
기도는 대화라고 하잖아요?
한나는 하나님과 참 많이 대화하고, 가깝게 대화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예전에 딸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마치고 오면 집이 시끌시끌했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말했습니다.
때로는 흥분해서 뛰고, 소리를 지르기도하고, 때로는 부끄러워하고 귓속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형태로 말하면서 부모와 소통했습니다.
저는 제 딸이 저에게 쫑알거리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든 상관없습니다. 통성이든, 묵상이든, 우리 아버지께 조곤조곤 다 얘기하면 됩니다.
기도는 고민도 상담하고, 속마음도 털어놓고, 도움도 요청하고, 수다도 떠는 영적인 대화 시간이니까요.
2.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삼상 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가 어떤 기도를 드렸습니까?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달라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소원을 이루고, 욕심을 채우고, 한을 풀어달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주시기만 하면, 무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칠 테니까, 제발 주세요.” 일까요?
과연 그럴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나가 기도하던 때는 사사기 끝자락입니다.
사사기가 영적인 암흑기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때에 한나는 기도합니다.
아들을 원하는 기도를 합니다.
아들을 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브닌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아들 없는 설움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한나는 아들을 낳아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합니다.
낳아서 자기 품에 데리고 있어야 아들 자랑도 하고, 브닌나에게 복수도 할 것이잖아요.
그런데 아들을 낳아서 바치면, 자기는 헛수고입니다.
아들을 낳아서 바치겠다는 것을 바꾸어 말하면, “바치기 위해 낳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일꾼을 배출하려고 아들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차이입니다.
저는 무엇을 기도하는지, 왜 기도하는지 돌아봅니다.
저도 저의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나 중심이 기도를 멈추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주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3.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
(삼상 1: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드디어 사사기의 어둠을 끝낼 사람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그 인물을 한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기도 중에 이것을 엘리 대제사장을 통해 응답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도 후에 보이는 한나의 반응은 더욱 놀랍습니다.
근심이 다 떠나가고 얼굴에 기쁨과 빛이 충만했습니다.
지금 아들을 낳은 것도 아니고, 임신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나는 기도의 응답을 확신했기에 미리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은 제게 참 도전이 됩니다.
저도 기도할 때 응답받았지만, 기도한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나처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도, 믿음으로 평안하지도, 믿음으로 기뻐하지 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신 줄 확신한 사람은 인생의 발걸음이 이미 승리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봅니다.
제가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나처럼 말씀대로 믿고, 믿음위에 굳게 서기 원합니다.
그래서 저도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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