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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3/22/23 삼상 18-20장 “다윗과 요나단” Publish on March 22,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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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85회 작성일 23-03-2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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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삼상 18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성경에서도 유명한 친구 관계입니다.

 

I.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 요나단은 장군이고, 왕의 아들이며, 차기 왕권을 잡을 자입니다.

• 다윗도 장군이고, 왕의 사위입니다. 

드라마에 나온다면, 둘이 경쟁하고, 다툴 수 있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경에서도 유명할 만큼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둘이 처음 만난 것은 사무엘상 18장에 나옵니다.

(삼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입니다.

골리앗에게 승리한 뒤에 당연히 사울은 다윗을 불러 대화했습니다. 

요나단은 왕자로서 그 자리에 배석했던 것 같습니다.

요나단은 그 대화 후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직역하면, 마음이 서로 연결되었고, 마음이 함께 묶였습니다. 

“마음이 일치되고 연합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한마음이 되고, 가까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신앙고백과 간증이 자기 코드와 맞았던 것입니다. 


이후로, 다윗과 베프가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말이 1절뿐 아니라, 3절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삼상 18: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또한, 다윗은 요나단을 자기 형이라 불렀습니다.

후에 요나단을 회상할 때, 그 형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여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뛰어났다고 회고했습니다. 

(삼하 1: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요나단은 마음으로 사랑했을 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삼상 18:4)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왕자의 옷과 갑옷을 넘겨줄 정도로, 요나단은 자기 자신과 다윗을 하나로 여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다윗을 이만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다윗의 권위를 세워준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에서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면서, 왕이 세마포 옷을 입혀 주었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창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시간이 갈수록 그 우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20장에 넘어가면, 사울의 미움이 커져서 다윗이 도망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는데요. 

이때 요나단이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20: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요나단이 이런 말 할 때가 언제입니까?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입니다.

그러면, 주변에서 뭐라 말했을까요?

● 요나단에겐 “다윗 조심하라”고, “다윗 저거 보통내기가 아니다”라고, “네 자리를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사람이 다윗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 다윗에게도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요나단 믿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주위에서 별소리를 다하고, 이간질을 하고, 헛소문을 퍼뜨릴 때, 다윗도 사울 때문에 불안할 때, 요나단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에게 말하기를, “무슨 말이든 다 하라”고,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나라의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는데, 다윗의 소원이 뭐겠습니까?

● 살려달라고 할 것이 뻔 하잖아요.

● 살도록 도와 달라 할 것이 뻔 하잖아요.

● 왕자의 입장에서 아주 곤란한 소원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요나단은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차, 다윗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삼상 20: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다시 나옵니다.

그리고 다윗과 요나단은 깊은 우정의 맹세를 했습니다. 

요나단은 죽을 때까지 이 맹세를 지켰습니다.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것을 결코 돕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왕이 된 뒤에, 요나단의 가족들을 후대해 주었습니다. 

진짜 친구 한명 얻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다윗과 요나단은 개인적으로 친구였을 뿐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요, 협력자요, 파트너였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동반자 관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고,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고, 서로를 위해 속마음을 얘기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를 위해 못할 일이 없었듯이, 서로를 목숨보다 끔찍이 아꼈듯이,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가기 원합니다. 

 

II. 여호와 중심의 우정

다윗과 요나단이 어떻게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되었을까요?

둘이 친해진 데에는 인간적으로 코드가 맞고, 결이 맞는 이유도 있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두 사람이 신앙적인 코드가 맞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어인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늘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둘이 대화하는 장면에는, 특히 중요하게 대화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여호와가 등장 합니다.

(삼상20: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삼상20: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은 다윗이 결국 대적들을 물리치고 왕권을 잡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대적들을 물리쳐 주셔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또한, 요나단은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계신다고 합니다.

(삼상20: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삼상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23절에서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신다” 라고 했는데요.

42절에서는 더 강력하게 말합니다. “자기 세대뿐 아니라, 자기 자손들의 세대까지도” 여호와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이 맺어주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하나님이 동행하심으로 이어지는 관계였 습니다.

 

두 사람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동반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하나님 우선이요, 하나님 중심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한 관계를 지향했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16절과 42절을 다시 보십시오.

(삼상20: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삼상20:42)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두 사람이 언약을 맺고, 맹세를 했습니다. 

언약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두 사람이 약속하는 ceremony를 한 것입니다.

맹세는 언약하는 ceremony는 없지만, 구두로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 다 인간적인 약속도, 맹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약속은 깨지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약속을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굳게 지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이 장면 이후로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1)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추격하는 아버지 사울 왕에게 결코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마지막 전투에 나가서 죽을 때까지도 다윗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2) 다윗도 나중에 왕이 되었잖아요?

왕이 된 뒤에도 요나단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나중에 풍비박산 난 사울 가문 중에서 요나단의 자손들을 찾아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어릴 때 다리를 다쳐서, 두 다리 모두 장애를 얻었는데요. 

당시에 장애인은 사회적 지위가 아주 낮았고, 생존 자체가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다윗이 장애인이 된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환대했습니다.

자기 왕자들과 동급으로 대우했습니다.

(삼하 9:11) …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이처럼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잘해준 유일한 이유는 아버지 요나단과의 언약 때문이었 습니다.

그가 옛날의 언약과 맹세를 기억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 안에서 교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동반자는 연약한 자를 돌볼 책임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둘이 하나님 중심의 관계를 만들 때,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은 므비보셋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시 가장 연약한 자를 돌보시고,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얼마나 연약한 분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교회에서도 연약한 분, 소외된 분, 관심이 필요한 분을 돌아보기 위해 애써야겠습니다.

그래서 다 함께 주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기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OUpjKfqQ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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