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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3/25/23 삼상 29~31장 “사울의 죽음” Publish on March 25,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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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25회 작성일 23-03-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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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삼상 3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사무엘이 죽은 후에, 사울 왕국의 지도력에 큰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 틈을 타서 블레셋 연합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결국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였고, 전사했습니다.

사무엘 상하를 쉽게 요약하면, 사무엘상은 사울 왕국이 끝나는 이야기이고, 사무엘하는 다윗 왕국이 세워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전사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신접 때문입니다.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고, 갈릴리 호수 남서쪽 이스르엘 평원에 있는 수넴에 진을 쳤습니다.

사울도 온 이스라엘군을 길보아 산에 집결시켰습니다.

수넴과 길보아는 거리가 겨우 12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두 군대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진을 치고,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블레셋이 너무 겁이 났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으나, 여호와께서는 불의한 사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은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무당)을 찾아갔습니다. 

엔돌은 수넴보다 더 북쪽에 있는 곳입니다.

당장 적이 눈앞에 있는데, 적보다 더 멀리 있는 무당을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올렸 습니다.

물론 이것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고, 무당이 만든 가짜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당의 얄팍한 수단에 빠진 사울은 가짜 사무엘이 하는 말에 속았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31장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대패하고 전사했습니다.


1)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행동입니다 (레 19:31, 신 18:11).


2) 이것은 일종의 내로남불입니다.

사울도 한때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내린 무당 소탕령을 어기고 있습니다.

남이 하는 것은 부당한데, 내가 하면 갑자기 정당해진 것입니다.


3) 그 사무엘은 가짜입니다. 

애당초 죽은 사람을 현생으로 불러온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이교적입니다.

무당이 불러온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고, 가짜이고, 속임수일 뿐입니다.


또한, 무당도 그리 영험하지도 못합니다.

그녀는 처음에 사울을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만약 사울이 똑똑했다면, 이미 여기에서 그 무당의 실력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

그러나 마음이 급한 사울은 그런 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2. 하나님께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그는 사무엘을 대신해서 제사를 지냈고, 진멸 명령도 거역했기에,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그러나 버림받고도 15년 동안 왕위를 더 유지했습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악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 아히멜렉을 포함하여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제는 심판의 때가 이른 것입니다.

역대상은 사울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에 징계 받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역대상 10:13)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사울은 한때 참 겸손한 사람이었고,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했을 때 성령이 떠나갔고, 악령이 그를 번뇌케 했습니다. 

(삼상 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한때 그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는데, 타락한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3. 이 사건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거짓 사사가 블레셋에 패한 것입니다.

사사 중에 블레셋과 싸운 사사는 삼손이었습니다.

(삿 13:5)...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은 이제부터 사사가 블레셋을 물리치기 “시작”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삼손의 역할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완전히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참 사사일 때는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타락하고, 결국 나실인의 규례를 버리고, 머리가 깎이고, 참 사사의 표지를 잃어버렸을 때는 블레셋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삼손 이후에 블레셋과 맞서는 사사들도 똑같은 패턴을 이어갑니다.

거짓 사사는 블레셋에게 패했고, 참 사사는 블레셋과 싸워 이겼습니다.

● 타락한 사사였던 대제사장 엘리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 전투에서 죽고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삼상 4). 

● 사울왕도 타락한 뒤에는 블레셋과 싸워서 이기지 못했고, 끝내 전사했습니다.

● 결국,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도 죽임을 당합니다(31:2).


그러나 참 사사는 블레셋과 싸워 이겼습니다.

● 사무엘은 맨손으로 제사지내기만 했는데, 승리했습니다.

● 사울왕도 타락하기 전에는 블레셋과 싸워 이겼습니다.

● 다윗도 돌멩이로 승리했습니다.

● 나중에는 다윗의 부하들도 거인들을 다 때려잡았습니다.


4. 그런데 사울의 죽음이라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 왕국의 입장에서는 왕이 죽고, 왕자들도 다 죽어버린 상황은 더없이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죄인인 사울 뒤에 다윗이라는 신실한 일꾼으로 새로운 왕을 세우신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준비하신 다윗 왕가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인위적으로 사울을 죽이기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름 부음 받았지만, 계속 도망 다녔습니다.

다윗을 죽일 기회가 2번이나 있었지만, 결코 그에게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 상황을 마무리하시고, 다윗이 왕이 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사울 왕국은 절망적으로 끝이 났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새로운 다윗 왕국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절망에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다윗의 모습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1) 이때 다윗이 블레셋에 거주했기 때문에, 블레셋과 사울 왕국의 전쟁에 참여해야 했는데요.

그런데 하나님이 블레셋 장군들의 마음에 불안을 심어주셔서, 다윗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요.

이때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삼상 29: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이것을 좀 더 쉽게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삼상 29:9, 새번역)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장군이 정직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아오. 나는 장군을 하나님의 천사처럼 여기오....”


당시 다윗은 블레셋에 도망가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정직하고 선하게 행동했습 니다.

이방인에게조차 천사처럼 여김 받고 있었습니다.


2) 사울과 다윗은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모습이 전혀 달랐습니다.

다윗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집(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아말렉이 쳐들어와서 마을을 불태우고, 가족들을 전부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찾아 나설 수도 없습니다.

시내 반도 넓은 땅에서, 어디로 간 줄 알고 추격해 가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절망스런 상황입니다.

화가 난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삼상 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사울은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무당을 찾아갔고 범죄했지만,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힘입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대로 움직였습니다.

우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움직였습니다. 

결국 가족을 구출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탈취물을 골고루 나누어 주어서, 갈등의 소지를 없앴습니다.


저도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신실한 종이 되고 싶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혹시 곁길로 가더라도,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 미리미리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사람 눈에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조차도, 하나님이 행하실 구원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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