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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3/26/23 삼하 1-4장 “활의 노래” Publish on March 26,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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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35회 작성일 23-03-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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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부터 사무엘하를 묵상하게 됩니다.

사무엘상은 사울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사무엘하는 다윗이 왕이 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중에 오늘은 1장,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을 묵상하겠습니다.


사울은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블레셋이 크게 승리했고, 사울과 아들 아들들도 다 전사했습니다.

전쟁 후에, 전리품을 훔치려 했던 아말렉 인이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것을 발견하고, 다윗에게 와서 보고했습니다.

아마도 상금을 두둑하게 받을 줄로 알고, 자기가 사울을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을 죽였다”는 말로 인해, 그는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고, 노래를 지었습니다.

노래 제목은 “활의 노래”입니다.


애가의 제목을 “활의 노래”라고 지은 까닭은 몇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요나단의 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삼하 1: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다윗의 노래로 보아, 요나단은 활쏘기의 명수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도 요나단은 최후까지 활을 쏘다가 전사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사울 왕을 피해 도망가라”고 할 때도, 활을 쏘아서 신호를 보냈었습니다. 


2) 사울이 죽을 때, 활을 맞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삼상 31: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3) 다윗이 애가를 활(수금의 현)에 맞추어 불렀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악기를 잘 다루는 시인이었기 때문에, 활로 수금을 켜면서 노래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노래의 내용은 두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왕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사울을 이스라엘의 영광이라 불렀습니다.

“(삼하 1:19)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자기를 죽이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엄연히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에게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이 전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슬픈 일입니다.


2) 부자가 한 날, 한 곳에서 죽었음을 애도했습니다.

(삼하 1:19)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라는 구절이 애가 중에 3번이나 반복됩니다(삼하 1:19, 25, 27).

여기에서 두 용사는 사울과 요나단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이스라엘의 용사였습니다.

이들은 주변 이민족들과 수많은 싸움을 싸웠던 용사였습니다.


3)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형이라 불렀습니다. 

사실 친형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나중에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후대해 주었습니다(삼하 9:13).


다윗은 이 “활 노래”라는 조가를 혼자 불렀을 뿐 아니라, 유다 족속들도 부르게 해서 널리 퍼지게 했습니다.

또한, “야살의 책”에도 기록했습니다.

(참고로, 야살의 책은 이스라엘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시로 기록한 책입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아, 머물라”고 했던 벧호른 전투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수 10:13). 그러나 “여호와의 전쟁기(민 21:14)”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으로 개인적으로 애도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의 죽음으로 공포하고, 공개적으로 애도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자기를 죽이려 했던 추적자가 사라진 것으로 축하하지 않았습니다.

이 조가를 통해 다윗이 사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드러냈습니다. 

사실, 과거에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을 때도, “(삼상 24: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라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추격 당하면서도 사울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세속 역사는 전임 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행동은 의로운 것으로 정당화하곤 합니다.

조선 이성계의 경우만 해도, 조선을 건국한 후에 고려 왕조를 비판하고, 건국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문학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았고, 반대로 사울의 좋은 점은 부각하여 애도하고 있습니다.


사울 후손들을 멸절시키지 않았습니다.

세속 역사에서는 이전 왕가의 후손을 멸절시키는 것이 흔한 일입니다.

반란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죠. 

실제로, 다윗도 헤브론에서 왕위에 등극하고 난 뒤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아브넬 장군의 일파와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나단을 기억했습니다.

요나단의 장애인 아들인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왕족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사울을 끝까지 왕으로 높여준 것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 유다(르호보암)에게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설립했던 북이스라엘(여로보암)의 역사는 쿠데타의 연속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208년의 역사 동안 19명의 왕이 통치했는데, 9번이나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8명이 유혈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344년 동안 20명의 왕이 통치했는데, 단 한 번도 왕조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아달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여왕에 즉위한 적이 있으나, 나중에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높이고, 그의 죽음을 슬퍼한 다윗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인품과 사람됨, 넓은 아량이란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사람이 좋고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바탕이 된 인품이었습니다.

신앙이 만들어낸 인품이었습니다.


다윗의 애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노래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에서 우러나왔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에 대한 존중(respect)을 빼고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요나단과도 “언약 맺은 것”을 빼고는 그의 슬픔과 므비보셋에 대한 환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인간적인 감정을 뛰어넘게 만든 것입니다.

마치 요셉이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인간적으로 미워하거나 복수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어 끝까지 지켜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봅니다.

저도 살면서, 저를 반대하거나 부딪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만나겠지요.

그런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진심으로 아파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사울과 요나단을 끝까지 사랑했던 다윗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vQeAmrM17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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