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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2/26/23 신 24~27장 “약자보호법” Publish on February 26,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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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04회 작성일 23-02-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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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은 신 24장을 묵상하겠습니다.

23장 후반부와 24장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규례를 약자 보호법이라고 합니다.


I. 구약의 약자 보호법

약자 보호법은 약자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동일하게 귀중한 존재임을 확인해 주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보호하려는 방편이었습니다.

약자 보호법은 출애굽 직후,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함께 주신 규례입니다.

출 20장에서 십계명을 주셨고, 그 뒤에 23장까지 율법을 주셨습니다.

출 21~23장이 시내산 언약에서 주어졌기 때문에, “언약 법전(계약 법전)”이라고 부르는데요. 

과부, 고아, 나그네 같은 대상을 배려하고 있으므로, “약자 보호법”이라 하기도 합니다.

“(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출 22: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약자보호의 정신은 출애굽기뿐 아니라, 모세오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식년이나 희년에도 약자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모세오경 전체를 보면, 당시 약자였던 고아가 13번, 과부는 18번, 가난한 자가 12번, 나그네가 10번, 타국인이 14번, 나그네(거류하는 자)가 22번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선지서에서도 선지자들은 유대인들이 종교의식은 잘 지키면서도,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책망했습니다(사1:10∼17, 23, 렘5:28, 슥7:10).

예수님도 당시 소외계층이었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셨고, 또 다른 과부의 두 렙돈을 소중히 여기셨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눅 7:13-16, 막 12:42-44, 마 11:19).


II. 신 24장의 약자 보호법

그리고 오늘 본문인 신 24장에도 약자 보호법이 나옵니다.

1) 당시 약자였던 아내가 이혼당할 때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야 했습니다(신 24:1-4).

원래, 성경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라도, 서류 절차를 밟도록 했습니다.

함부로, 충동적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 나중에 유대인들은 이 규정을 악용해서, 이혼 증서를 쓰기만 하면 함부로 내보내도 되는 것처럼 율법을 변질시켰습니다. 고르반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2) 불치병이며, 부정한 존재였던 나병 환자도 정확한 규정대로 처우하라고 하셨습니다(신24:8-9).

무조건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가난한 자에게 겉옷을 전당물로 잡을 때는 해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합니다(신24:10-13).

밤에 그것을 이불처럼 덮고 자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가 담보자에게 복을 빌어주는 기회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이 구절만 본다면, 담보자가 재산을 압류하는 비정한 장면이 아니라, 사회복지 활동하는 장면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4) 품꾼을 고용할 때도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신24:14-15).

품삯을 해지기 전에 지급해야 합니다.

5) 연좌제를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신24:16).

6) 외국인(객)이나 고아와 과부의 권리도 존중해야 합니다(신24:17-18).

7) 추수할 때도 가난한 자들을 배려해야 합니다(신24:19-22).

곡식을 추수거나 과일을 딸 때도 약자들(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을 위해 일부를 남겨두라고 하십니다.

신 24장의 율법은 일관되게 연약한 약자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와 배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III. 약자 보호법의 참된 기능

1)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사회복지 차원에도 좋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출애굽 할 때는 모든 사람의 사회적/경제적 형편이 거의 동등했습니다.

다 같은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게 되면, 상황에 따라 형편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배려하라 하셨습니다.


2) 약자 보호법은 출애굽을 기억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이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강조하셨습니다(출 20:2). 

마찬가지로, 그 이후의 모세 율법에 나오는 약자 보호 조항들도 출애굽 정신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레 25장에서 희년을 설명하시면서, 유대인 종을 조상의 기업으로 돌려보내는 이유가 “그들은 하나님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레 25:38, 42, 55, 26:13).

신 15장에서는 약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신 15:15). 


3) 약자 보호법의 더 근본적인 역할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잘 먹고, 배부르게 될 때,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실제로 가나안 땅에서 잘 먹고, 배부르게 될 때, 그들이 어디에서 구원받은 자인가 하는 것과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구원받은 자인가 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도 다른 세상과 마찬가지로 배금주의 사회였고,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그 땅 백성의 문화에 물들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이 세상)에서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않고, 어디에서 구원 얻은 자인가 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가난한 자를 돌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IV. 묵상 

오늘 약자 보호법은 몇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1) 나의 원래 존재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서 현재의 모습에 집중하다가, 자신의 원래 존재를 잊게 될까 염려하셨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해서 사회적, 물질적 차이가 생겼다고 해서, 형제에게 차등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출발이 애굽의 노예였고, 가난한 자였음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기억 못 하는 꼴불견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부자이고,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자고, 하나님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자입니다.

제가 바로 이런 위험에 빠지기 쉬운 자입니다.

목사라고 하고, 성도들에게 설교하고, 성경공부 가르치고, 기도해 드리니까, 제가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추악한 죄인이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이고, 영적으로 가난한 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2) 현실의 물질 축복 

물론, 예수님 잘 믿으면 물질적인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을 너무 영적인 복으로만 국한하는 것도 이원론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나 저의 문제는 부자는 하나님께 물질적인 복을 받은 것이라고 쉽게 연결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부자여도 하나님의 복이 아닌 다른 통로로 부자가 될 수 있고, 가난해도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자는 하나님께 복 받은 것이고, 가난하면 하나님께 복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너무 단순하게 일반화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약자인 나

제가 교회 생활한 지 몇 년이고, 목사이고, 학벌이 어떻고 하면서, 제가 가진 것들을 은근히 드러내고 자랑하는 마음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 앞에서 약자이고, 소외계층인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진 것이 쥐뿔도 없고, 오직 하나님께 도움 받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늘 하나님의 보호와 배려를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4) 저도 약자를 돌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하나님 앞에서는 "주여, 저는 가난하오니,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해놓고, 다른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혀 그런 마음이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이고 외식이고 거짓된 경건입니다.

예수님은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 니다(마25:40).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참된 경건이라고 했습 니다(약1:27).

바울도 헌금의 정신에 평균케 하는 원리를 적용했습니다(고후 8:13-15).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내거나 아니면 도움을 받음으로써, 언약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언약 공동체 안에 물질적 차별이나 영적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혹시 제가 연약한 분들을 섬기면서, 그것을 단지 일로만 여기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그분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해야겠습니다.

그분들의 영혼에도 더 관심을 두어야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저의 관심이 교회 안에 있는 가난한 자에게 더 집중되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밖에 있는 분들에게도 더 관심을 가지려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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