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23 삿 1~3장 “보김” Publish on March 09,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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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식구 여러분,
오늘부터 사사기를 묵상하게 됩니다.
사사기는 정복시대 뒤부터 단일왕국 시대가 되기 전, 350년간의 과도기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사사 시대는 한마디로 영적 암흑기입니다.
1) 하나님을 버림(우상숭배),
2) 이방 민족을 통한 압제(고통),
3) 회개와 구원을 간구,
4) 사사를 통한 구원과 평화
5) 망각의 악순환이 7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바락),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등 총 12명의 사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는 왕과 비슷하지만, 당대만 임무를 수행했고, 세습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사는 여러 면에서 예수님의 역할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처럼, 왕, 제사장, 선지자, 3직을 수행하는 특별한 직책이고, 기름 부음을 받았고, 백성을 구원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사사기란 제목이 사사에서 유래했지만, 사사기의 핵심은 사사가 아닙니다.
사사기는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때에 나타난 타락의 실상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핵심 구절은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었으므로 (17:6, 18:1, 19:1, 21:25, 4번 반복)’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삿2:11, 3:7, 3:12, 4:1, 6:1, 10:6, 13:1, 7번 반복)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요.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억지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에 진짜로 왕이 없었나요?
* 역사적으로 보면, 사울이 초대 왕이니까, 사사기에는 왕이 없었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 하지만,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유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냉소적 표현(cynical expression)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전체 구조는 간단합니다.
1) 이스라엘의 정복과 신앙 유지 실패(1~2장),
2) 사사 이야기(3-16장),
3) 영적, 도덕적 타락(17~21장)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삿 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1. 보김의 실패
삿 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실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삿 1장에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거나 아니하였다는 구절이 9번이나 나옵니다(1:19, 21, 27, 28, 29, 30, 21, 32, 33).
2장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에 실패한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신앙을 지키는데도 실패했다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점령하고, 기업을 나누어 가졌지만, 약속의 땅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잊고, 가나안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여호수아와 출애굽 사건을 아는 어른들이 다 죽자, 그다음 세대는 급속도로 타락해 갔습니다.
하나님은 수 23장에서 하나님은 쫓아내지 않으면,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된다고 경고하셨는데요(수 23:13).
삿 2장에서 하나님은 천사(사자)를 보내어 이 사실을 다시 알려주셨습니다.
“(삿 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 말씀을 하자, 백성들이 소리 높여 울었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언뜻 보면, 이 울음과 제사는 참으로 신앙적으로 복입니다. 회개의 울음과 제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모든 울음이 회개의 울음은 아니란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울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우는 울음도 있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는 울음도 있습니다.
마치 애들이 고집부리고, 떼를 쓸 때 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보김에서도, 하나님이 약속의 땅에서 약속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시니까, 자기들은 억울하다고, 분통하다고 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종교적인 방식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항하거나 떼를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1) 눈물로 기도하고, 금식기도라고, 철야 기도하기도 하면서, 자기 뜻을 수용해 달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기보다는 하나님이 내 뜻을 따라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간섭 받기를 싫어하는지, 가장 종교적인 방식까지 동원해서 하나님을 설득하고,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라는 표현은 어떤 면에서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하나님이 앉으신 자리를 잡고 흔들어서라도 내 뜻을 관철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의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내가 메인(main)이 되어 내 맘대로 하다가, 뭔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생기면, 그 부분만 살짝 도와주시길 원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나,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을 뺏긴 것이나, 문화 명령을 어기고 바벨탑을 쌓고 자기 이름을 내려고 했던 것이나, 다 일맥상통한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괴롭고 힘들어서 우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종교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고집과 자기 뜻을 관철하기 원하면 살았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제가 이렇게 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저의 삶도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종교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저의 뜻과 고집과 계획을 추구하며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 뜻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을 기도라고 착각하며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말하기보다 듣는 것에 더 집중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제 뜻을 꺾는 훈련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순종하는 것에 집중해야겠습니다.
II. 자녀들의 신앙
만약 보김의 울음이 진정한 회개였다면, 그다음에 회개의 열매가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김의 울음 뒤의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는 결과만 나오고 있다는 것이, 보김의 울음이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보김에서 메시지를 들은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피부로 체험하며 살았던 세대입니다.
요단강 바닥을 밟으며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하늘의 해를 멈추게 하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나마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앙하며 살았습니다.
“(삿 2: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런데, 2:10에는 놀랄만한 반전이 나옵니다.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그 아버지 세대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며 살았던 세대인데, 그 아들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부모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 자식들도 하나님을 섬기도록 교육하는 일에는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1)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하루 이틀에 끝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 정복이 완결된 것은 다윗 시대에 와서 이루어졌습니다.
2) 틈만 나면, 뒷산 골짜기에 숨어있는 가나안 거민들을 정복하러 가야 했습니다.
또 평소에는 농사도 지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 부모들이 편히 앉아 자녀들을 교육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3) 또한, 신앙은 개인적이잖아요.
아무리 어릴 때부터 교육하고, 훈계하더라도 부모 맘대로 잘 안 되는 것이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못한 책임이 감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이들에게 자녀 교육의 의무를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 직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신앙을 전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신 6:7).
그런데 오늘 읽은 사사기 본문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뒷산 골짜기에 있는 가나안 족속들 쫓아내기 바빠서, 자녀 교육에 소홀해졌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땅에 눈이 멀고, 새로 배워야 하는 농사에 바빠서, 자식 농사는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자녀 교육 때문에 미국 왔는데, 막상 미국에서는 돈 벌기에 바빠서 자녀들 교육이 뒷전이 되어버린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것은 그 후손들이 패역한 사람들이어서 그렇다고 칩시다.
그러나 자녀들이 하나님의 하신 역사도 모른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를 품에 안고 하나님이 어떻게 할아버지들을 출애굽 시켰고, 광야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정복한 영웅담만 전했지, 그들과 함께한 하나님은 쏙 빼먹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뒷산에 있는 가나안 족속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우리 아빠 만세!”
그런데, 그렇게 해주신 하나님 이름은 쏙 빼버린 것입니다.
저도 대학생 자녀들의 부모이다 보니, 이 본문 앞에 너무나 두렵고 떨립니다.
저는 얼마나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교육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자녀들의 공부도 중요하고 진로도 중요하지만, 신앙이 더욱 중요함을 생각합니다.
나중에 “그건 아빠의 하나님이고, 난 아니에요.”라고 할까 봐 두렵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저의 품을 떠날 날이 다가 올 텐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다급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부터 자녀 교육에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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