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0/23 창 24~26장 "이삭"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페이지 정보

본문
1월 10일 (화) 창 24~26장 "이삭"
BCPC식구 여러분,
오늘은 창 26장에서 이삭이 복 받는 장면을 묵상하겠습니다.
믿음의 조상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떠올리죠.
아브라함은 원조 믿음의 조상으로 너무 유명하고, 야곱도 극적인 인생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들에 비해 이삭은 비교적 덜 주목받는게 사실입니다.
1. 그러나, 이삭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장면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삭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은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의 외아들 이삭은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지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16세의 혈기 왕성한 소년은 번제단에서 제물로 바쳐질 상황이었는데도, 죽기까지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하여 죽을 숫양(male lamb)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 참고) 원래 뜻- 지켜보시는 여호와)라 불리었습니다.
나무를 지는 것도, 제물 되는 것도,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도, 대신 숫양이 죽는 것도, 우리를 위해 대속 제물을 준비해 주신 것도 모두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하나님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이”라고 했는데요(롬 8:32).
이것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준비하신 것은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아들이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삭을 바치려 했던 곳이 모리아 산입니다.
모리아 산은 나중에 시온산, 성전산이라 불리게 됩니다.
다윗이 성전을 세우려 할 때, 이곳에 있던 “오르난(또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는데요(대상 21, 삼하 24).
결국, 그곳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대상 22:1).
나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외곽에 있던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곳 주변에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성전이 세워졌고, 그 성전 주변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속 제물로 돌아가신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모리아산과 시온산 성전과 골고다 십자가의 이미지가 서로 오버랩되는 것입니다.
2. 이삭의 또 다른 특징은 온유함입니다.
이삭이 축복의 통로가 되는 과정은 아브라함이나 야곱과는 다른 특색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긴 여행을 하면서 실수를 통해 믿음을 배우고 실천했습니다.
야곱도 축복을 얻기 위해 인간적인 꾀를 쓰다가, 결국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처음부터 온유했습니다.
죽을 위기에서조차 묵묵히 있었던 이삭은 그 뒤로도 평생 언성을 높이거나, 자신의 유익을 주장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면서도 잠잠한 어린양처럼 말입니다(사 53:7).
그가 자기 유익을 주장치 않고, 잠잠히 양보하였지만, 그것을 통해 축복받는 이야기가 26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인생 말년에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축복의 통로로 환영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죽고 난 후에, 환영은 시기로 바뀌었습니다.
이삭은 주변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았고,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은 이삭이 소 떼와 양 떼가 많은 것을 싫어했고,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도 메워버렸습니다.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우리를 떠나라.”라고 추방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창 26:16).
그후, 이삭의 고난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곳을 떠나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파서 물을 얻었는데요.
기가 막히게도, 그랄 목자들이 그 우물을 자기 것이라 주장합니다.
결국, 그것을 내어주고 맙니다.
- 이삭은 그 우물을 에섹(다툼)이라 불렀습니다.
그후, 두번째 우물을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또다시 시비를 걸었고, 그것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 우물은 싯나(반대)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거기서 멀리 옮겨 더 깊은 내륙으로 들어갔습니다.
땅은 넓었지만, 물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물이 없으면, 광야는 메마른 땅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물을 팠는데, 또다시 물줄기가 터졌습니다.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깊은 광야였기 때문에,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었습니다.
이삭은 세 번째 우물을 르호봇(넓은 곳)이라 불렀습니다.
이삭은 다투면 양보하고, 주장하면 물러서고, 큰소리 질러도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누가 이렇게 산다면, 바보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이삭을 축복하셨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조상들과 비교해도, 가장 빠르고 쉽게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는데요(마 5:5).
온유했던 이삭은 그 온유를 통해 땅을 얻었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3. 결국, 이삭은 아버지의 언약을 물려받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언약을 받고 길을 떠난 후로, 아브라함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을 경험했고, 그 언약을 갱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과도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창 26: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은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복의 근원이요, 축복의 통로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예를들어,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언약 맺기를 청할때, 이삭이 하나님께 복받은 자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9).”
이것은 단지 이삭이 부자가 되었다거나,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땅과 씨와 복을 주겠다 약속하셨던 아브라함 언약이 이삭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비멜렉의 입을 통해 증언해 주는 것입니다.
이삭이 축복의 통로가 된 것은 온유함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온유한지 돌아봅니다.
저는 무엇에 목소리를 높이는지 돌아봅니다.
복음을 위해 열정을 가지고, 저의 유익을 위해선 조용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주의 일을 위해선 충성하지만, 저를 위해선 물러서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본다면, 바보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길임을 생각합니다.
이삭처럼 산다면, ㄱ독이란 말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갈 수 있을줄 믿습니다.
저부터 먼저 이삭처럼 사는 것을 연습하고, 적용하며 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 이전글01/11/23 창 27~30장 "야곱" 23.02.11
- 다음글01/09/23 창 21-24장 23.02.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