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4/23 창 37-40장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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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토) 창 37-40장
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창 40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온 39장 이야기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형통임을 볼 수 있는데요.
오늘 40장 이야기에서는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는 과정이라면 형통인 것을 보려고 합니다.
1. 요셉은 감옥에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쩌면 잠시 후에 주인이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술 맡은 신하의 꿈을 해석해준 다음일 것입니다.
어느 날, 술 맡은 신하와 떡 굽는 신하가 꿈을 꾸었는데요.
요셉은 술 맡은 신하가 복직될 것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신하가 복직되면,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창 40:14).
그러나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그는 복직된 후에 요셉을 기억해 주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그를 잊었습니다(창 40:23).
어떤 면에서, 이것은 일종의 배신이죠.
또한, 인간적인 도움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무튼, 요셉 입장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풀려날 확률은 거의 없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완전히 바닥을 헤매었습니다.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로, 죄수로, 다른 죄수에게 배신당하는 자로…….
그는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조차 하나님은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형통의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계셨습니다.
2. 요셉은 감옥에서 영육이 매이는 상황에 대해 단련 받았습니다.
시편 105편을 보면, 요셉 사건을 더 생생히 엿볼 수 있습니다.
(시 105: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히브리어 직역: 그의 발은 족쇄에 괴롭힘을 받았고(또는 족쇄로 인해 엎드러졌고), 그의 영혼이 쇠에게 갔다(또는 쇠가 그의 영혼 안으로 들어갔다).
감옥에 있으니 당연히 육체적으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괴로웠습니다.
감옥에서 있는 시간이 오래되고, 인간적인 실망도 하면서, 그의 마음과 감정도 사슬에 얽매이는 듯했습니다.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것은 한국식 표현이고요.
히브리어식으로 표현하면, 쇠가 그의 영혼을 꿰뚫었습니다.
정육점에 가면 쇠갈고리로 고기를 꿰어 매달아 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요.
그의 영혼도 마치 쇠갈고리에 꿰인 듯 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총알이 몸을 관통해서 지나간 것처럼 된 것입니다.
영혼이 꿰어졌다면, 정신줄 놓은 상태가 되겠죠.
정신이 혼비백산 흩어졌고, depress되었고, 우울감과 절망감으로 바닥을 쳤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을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배웠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존재이지, 의지할 존재는 아니란 말이 생각납니다.
저도 사람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힘들 때, 누가 나를 도와준다면 너무 힘이 될 테니까요.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사람은 썩은 동아줄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동아줄임을 기억하고, 어찌 되었든 간에 하나님께 매달려야겠습니다.
2) 요셉은 감옥에서 내일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단련을 받았습니다.
(시 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히브리어 직역: 시간이 될 때까지, 그의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했다(시험했다).
그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시간입니다.
도대체 이 고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지금 요셉은 내일 일을 모르면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워렌 버핏이 했다는 말을 읽었습니다. “누구도 내일이나 다음 주, 다음 달, 내년에 시장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아무도 내일 뭐가 발생할지 모른다.”
Covid-19 시대에 내일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했던 말입니다.
버핏이 내일 일을 모르듯, 우리가 고난 겪을 때도 내일 일을 모르면서 고난을 겪습니다.
이것이 언제 끝나는지만 알아도, 내일인지, 일주일 뒤인지, 1년 뒤인지만 알아도, 훨씬 견디기 쉬울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내일을 모르는 것이 고난이 주는 훈련과목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In his time”,“God’s time is the best time.”이란 단어의 깊이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3) 105편을 보면, 요셉이 팔린 것도, 사슬에 매인것도, 다시 석방된 것도, 총리가 된 것도 다 수동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이 비전을 굳게 붙잡았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능동적으로) 말씀을 의지해서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105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절규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그의 혼이 쇠사슬에 묶여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는 왜 내게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지, 상황을 해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요셉이 잘 한 일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문법적으로 수동형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렸고, 하나님에게 의지했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당하는 상황을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도 있고, 상황이나 시각이 바뀌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고, 이끄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저도 더욱 하나님이 하신다는 시각을 가지기 원합니다.
역사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기 원합니다.
3. 어려움 중에 힘을 얻는 유일한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고, 기도를 통해 인도받는 삶을 훈련받았습니다.
요셉은 지금 기도 중에 주시는 말씀을 받았고, 영혼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먹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먼 미래의 일을 신경 쓰기보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영적인 양식에 집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 오늘 받는 은혜에 집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가 기억납니다.
그 당시 저는 인생의 비전을 찾느라고 정말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도하거나 큐티할 때마다 주시는 응답은 “먼 미래를 생각지 말고, 오늘 하루부터 잘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매일 큐티하면서 힘을 얻었고, 매일 하루의 삶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과정 중에 성경공부를 통해, 비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오늘 저에게 다시 적용해 봅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는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때, 저도 진정 형통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에 매일 성경을 통독하는 것이 우리의 복이고, 매일 묵상 편지를 쓰는 것도 제게 복입니다.
이 섬김을 통해 성도님도 복을 받고, 저도 복을 받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고, 진정한 형통을 누리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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