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23 출 3~5장 "스스로 있는 자"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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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목) 출 3~5장 "스스로 있는 자"
BCPC 식구 여러분,
평안하셨습니까?
방금 고 김학륜 장로님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참석해 주시고, 수고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출 3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오늘은 좀 어려운 내용을 건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burning bush(불타는 가시떨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입니다.
처음 40년 동안 모세는 패기가 넘쳤습니다.
Something의 인생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자였고, 자기가 백성들을 구원하겠다는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광야로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다음 40년은 Nothing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양치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도 없고, 그나마 이름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 80세에 하나님이 burning bush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왕궁에 살던 젊은 시절에 하나님을 위해 일해 보겠다고 나섰을 때는 잠잠하시더니, 지금 광야에서 늙어 가는데 나타나셨습니다.
“지금 와서 뭘 어쩌라고요?”
모세는 몇 번이나 부르심을 거절했습니다.
그 대화 중에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십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름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관계를 시작하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시작할 때, 남녀가 그저 친구 관계라면 “누구씨”라고 부르지만, 애인이 되면 “자기야”가 되고, 결혼하면 “여보”가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은 그 백성들과 관계를 맺겠다는 말입니다.
가까워지고, 친근해지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있는 자”는 해석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를 영어로 직역하면, I will be that I will be입니다.
그런데, 영어 문법에는 이런 표현이 없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영어 문법에 맞추다 보니, I am that I am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걸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 짧은 말속에서 여러 가지 뜻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
1. 나는 나다.
I am that I am에서, “I를 강조”하면, “나는 곧 나다(새번역, 공동번역).”가 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제게 묻습니다. “너 누구니? 너 뭐 하는 사람이니?”
제가 대답합니다. “나는 나지, 내가 누구야. 나는 나야.”
이런 분위기인 것이죠.
하나님은 비교 불가한 유일한 하나님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려 하시는데, 모세는 계속 부정적인 견해입니다.
■ 하나님은 “내가 너를 보내어(10절)”라고 하시는데,
■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11절)”하고, “내가 무엇이라고(13절)” 합니다.
no란 말이죠.
모세는 자기 관점에서 no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말에 대해 하나님이 다시 대답하시는데요.
하나님의 대답이 좀 이상합니다.
“내가 누구관대…” 라고 물으면, “너는 누구다”라고 대답하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누구인지 대답하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인지 대답합니다.
모세가 “내가, 내가” 하는데, 하나님도 “내가, 내가” 합니다.
(출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 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출 3:19) 내가 아노니…
(출 3:20) 내가 내 손을 들어…
(출 3: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런 문맥에서 14절에서도 “나는 …이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모세는 “내가..”라고 하면서, 자기의 실패 경험과 자기 관점을 바탕으로 “못한다”라고 합니다.
모세의 “내가”는 자기 능력의 한계와 무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 거기에 대해 하나님은 “네가 그러하냐? 나는 이렇다.” 하십니다.
“너의 관점이 아니라, 내 관점이 중요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내가”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의 모습이 모세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저의 관점에서 “내가”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났다/못났다고 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다/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내가 행복하다/불행하다고 하는 것도, 기준이 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겐 내가 누구고, 내가 어떤 능력, 어떤 재능을 가졌느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래 봐야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가 그 일을 하시느냐, 못하시느냐 입니다.
저도 “나의 내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내가”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저의 무능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기 원합니다.
저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이 된다고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2. 스스로 있는 자
I am that I am에서, “am을 강조”해서 번역하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개역, 개역개정)”가 됩니다.
영어를 예로 들면, be 동사는 가장 기본적인 동사이면서도, 매우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be 동사는 기본적으로 exist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I am a boy (나는 소년입니다) 같은 간단한 문장에서는 be 동사 am을 “… 이다(소년으로 존재한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햄릿의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에서는 be 동사의 해석이 훨씬 깊이가 있습니다.
- be를 존재로 보면, “존재한다, 산다”가 되고요.
- be를 사역이나 활동으로 보면, “복수할까, 말까?”, “죽일까, 말까?”가 됩니다.
그런데, 사실 "I am that I am"은 한국말로 번역이 안 되는 말입니다.
그래도 억지로 직역하면, “나는 나로 존재하는 존재이다. 나는 나의 존재로 존재하는 자이다 .”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의역해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 또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key point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입니다.
하나님은 남에게 의지하며 존재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사람은 혼자 존재하지 못합니다.
능력도 안 되고, 외로워서도 혼자 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모세는 이걸 몰랐습니다.
모세의 두 번째 40년은 “그분께 의존해야 한다”라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40년 동안 모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저도 제가 의지하던 것들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예수님만 의지하고, 철저히 의지하면서 사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3. 영원자
스스로 있는 자를 원래 직역하면, “I will be that I will be”라고 했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이미 존재하셨고, 지금도 존재하시고, 앞으로도 존재하실 분입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계시록에선 이렇게 표현합니다.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에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현재에 약속했다면, 그건 미래에 이미 성취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는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서 49장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해 주시는지, 손바닥에 새긴 것처럼 기억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가 너를 잊지 않으니, 너도 나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동일하시다는 말씀이, 영원히 동일하게 신실하시다는 말씀이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저도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순간순간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살아야겠습니다.
4. 존재케 하는 자
스스로 있는 자를 원래 직역하면, “I will be that I will be”라고 했는데요.
will be는 ‘존재’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역이나 행동’의 의미도 있습니다.
be 동사를 사역과 행동의 의미로 번역하면 “존재케 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무에서 유를 존재하도록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일을 지으시고, 성취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죽도록 맞으면서, 개돼지 취급받으면서, 일만 하는 노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주고,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노예에서 해방해 주고, 자유민으로 바꿔주셨습니다.
■ 모세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그의 현실은 미디안 광야의 양치기 영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 주셨고, 그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존재케 해 주시니까, 80세 노인이 당시 최강대국 애굽을 상대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모세를 해방자로 세우셨다면, 저의 현실도 새로운 현실로 재창조해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저의 존재도 새롭게 존재하도록 만들어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현재와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만드실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을 두고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가실 저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vision을 가지기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주만 바라보고 힘차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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