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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1/21/23 출 9-11장 "열 재앙의 이유"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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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29회 작성일 23-02-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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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토) 출 9-11장 "열 재앙의 이유"

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열 재앙에 대해 묵상해 보려 합니다.

열 재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들의 전쟁입니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열 재앙은 “바로가 여호와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열 재앙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이스라엘에게 있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열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이 배워야 할 것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I. 이스라엘도 여호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종살이 하느라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모세를 부르실 때, 출애굽을 통해 내가 여호와임을 제대로 알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출 6: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지라 


고대 사람들은, 땅에서 사람들이 전쟁을 할 때, 하늘에선 신들끼리 전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쟁에서 졌다면, 그 이유는 하늘에서 우리 신이 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민족 전체가 애굽의 노예입니다.  

그럼, 그 노예들이 믿는 신은 뭡니까? 노예들의 신입니다.

바로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 신들과 대놓고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하는 장면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똑똑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했습니다. 

(출 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그것이 열 재앙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얘들아, 나는 노예들의 신이 아니다. 

애굽 신들보다 약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참 신이고, 저들이 허수아비들이다.

내가 이긴다. 내가 더 힘세다.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요. 내가 참 신이다. 

너희들은 이것을 분명히 알아라. 깨달아라.” 라는 메시지입니다.


저도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이 나를 잡아 먹을 것 같고, 도저히 세상을 이길수 없을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열 재앙은 나의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단 말이니까? 

그 비결은 “능력주시는 자 안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를 두 글자로 바꾸면 “전능”입니다.

바울이 전능합니까? 

절대 아니죠. 

그럼 어떻게 전능을 행할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을 때, 바울도 전능해지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 바울이 슈퍼맨처럼 날아다니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 또는,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힘을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을 바로 믿을 때,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저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더욱 믿고, 하나님 안에 거하며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II. 이스라엘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방금, 하나님은 단지 애굽을 깨부수고, 애굽에게 힘자랑하려고 열 재앙을 내리는게 아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포커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 당시 이스라엘은 당대의 세계관에 물들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 400년의 노예 생활로 인해, 노예근성에 절어 있었습니다. 

-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 사고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못한다고 했습니까?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

(출 4:1)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출 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모세가 못한다고 핑계를 대는데, 그 이유가 끝도 없습니다.

자기는 너무 능력이 없고, 애굽은 너무 강대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을 듣지 않고, 더구나 자기는 입이 둔해서 말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을 못한다고 하면서, 정작 못한다는 말은 잘 합니다. ^^;;)

 

이게 모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천하의 모세도 이정도인데, 다른 유대인들은 어떻겠습니까? 

열 재앙 중에, 그들은 툭하면 모세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출애굽 후에도, 툭하면 애굽을 그리워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니, 당장 출애굽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생각을 뜯어 고치는 게 더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열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이 노예가 아니고, 자유민임을 알게 하고, 애굽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애굽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알게 하고, 반대로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에게 특별한 존재인지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애굽의 노예가 아니다. 노예근성을 버려라. 애굽에게 겁먹지 말고, 애굽 문화에 굴복하지 마라. 너희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다.”는 메시지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세상적인 세계관관 생각과 시각들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바른 자아상,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패배의식을 버리고 복음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복음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한 번에 되는게 아닙니다. 계속 반복해야 되는 겁니다.

왜 재앙이 10번이나 내립니까?

바로가 노예 해방으로 마음이 바뀌는데 10번이 필요했고,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시각을 깨고 믿음의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는데, 재앙이 10 번이나 반복되는 경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제 속에는 어떤 세상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사고가 있는지 돌아봅니다.

제 속에 있는 세상의 때를 벗겨버려야겠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 세속적인 욕심을 벗어버려야겠습니다.

 

물론, 이것이 한두 번 만에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의 재앙도 열 번이나 내렸잖아요?

저도 생각과 사고와 습관을 바꾸는 데에 여러 번의 시도와 반복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인 오뚝이가 되어야겠습니다.

 

몇 번 쓰러졌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10번이든 20번이든 될 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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