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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1/25/23 출 21-23장 "눈눈이이"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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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46회 작성일 23-02-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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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수) 출 21-23장 "눈눈이이"


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출 2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I. 율법, 사고방식과 생활양식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 도착했고, 드디어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1-23장에는 여러 율법 조항들이 나옵니다.


그 조항들을 읽을 때,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들을 서로 상관없는 조항들을 모아놓은 ‘법률모음집’이 아닙니다.

1) 21-23장은 앞에 있는 20장에 있는 십계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21-23장의 각 구절들은 십계명과 연관 지으면서 읽어야 합니다.


2) 좀 더 크게 보면, 19-24장까지가 시내 산 언약 맺는 장면이잖아요. 

● 19장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출애굽시켰다고 하셨습니다.

● 20장에서 십계명을 시작할 때도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도장을 꽝 찍으셨습니다.

그다음에 십계명 조항들을 주셨고, 율법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21-23장을 읽으실 때, 이런 문맥을 바탕으로 읽으시면 더 빨리 이해가 됩니다.

즉, 이 율법들은 하나님과 언약 맺는 것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3) 만약에, 이 율법들을 법조항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마치,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키게 되어서, 좀처럼 풀기 어렵습니다.

유대인들도 율법을 법조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률 밑에 시행세칙이 있잖아요?

유대인들도 율법 밑에 갖가지 시행세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것은 율법의 정신인데, 정신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으니까, 형식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꾸중들은 이유도, 율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외식과 형식주의 때문이었습니다.


4) 오늘 읽은 율법도 법률 조항이 아니라, 시내 산 언약이란 관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창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불러서 땅과 자손과 복의 언약을 맺으셨는데요.

그 자손에 대한 약속이 이삭 한명에서 200만 이스라엘 민족으로 커졌습니다. 

▷ 이제 출 19장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시내 산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노예였던 사람들을 출애굽시키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고 계십니다.


이것은 과거와 비교할 때, 엄청 큰 변화입니다.

● 너희들은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 너희는 애굽의 바로를 섬기는 자가 아니라, 나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 그래서, 애굽의 제도와 종교와 삶의 방식을 따르던 것을 버리고, 이제 내가 주는 새로운 방식대로 살아라. 

하고 주시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법조항이 아니라, 사고방식이고, lifestyle입니다.

새로운 사고 시스템이고, 새로운 행동 방식입니다.

애굽적인 생각과 행동방식을 버리고, 하나님 백성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라 라고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반복합니다.

앞으로 율법이 나올 때 마다 기억하세요.

“율법은 법조항이 아니라, 사고방식이고, lifestyle입니다.

애굽적인 생각과 행동방식을 버리고, 하나님 백성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라 라고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당시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 종과 여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살인이나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case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II. 눈눈이이, 하나님의 백성의 행동 방식 

오늘 묵상에서는 이 율법 조항들 중에 출 21:23-25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상해와 살인 사건에 대한 부분입니다.

“눈은 눈으로”라는 구절로 유명하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른 의미(언약적 문맥의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출 21: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출 21:25)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눈눈이이)”는 보복할 때 가장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구절을 복수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합니다.

“내가 맞았으니, 나도 때린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 땅에서는 국가나 법률이 요즘처럼 발달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개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복수를 해서 정의를 구현했습니다.

그 전통이 아직도 내려오고 있죠.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갈등이 계속 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복수법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가족이나 친척이 살해당하면, 남은 가족에게 그에 대해 복수해야할 책임이 생깁니다. 

한 명이 억울하게 죽임당하면, 수십 명의 가족들이 복수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쪽이 복수를 하면, 당한 쪽에서도 또다시 수십명의 가족들이 복수자가 됩니다.

피가 더 큰 피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중동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출 21장을 자세히 읽어보면요. 

이것은 복수를 정당화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반대로, “보복하는 범위를 제한하는 법”이고, “약자를 보호하는 법”입니다.

(너무 중요한 시각입니다!)

ex) 예를 들어서, 주인집 아들과 종의 아들이 같이 놀았는데요. 

어쩌다가 주인집 아들이 종의 아들의 눈을 시퍼렇게 멍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아무 일도 없습니다.


ex) 그런데, 반대로 주인집 아들의 눈이 퍼래서 집에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난리가 나지요.

종의 아버지는 전답을 뺏기고, 쫓겨날 것이고요.

종의 아들은 멍석말이를 당할 겁니다.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과거의 법이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눈 다치면 눈만 상하게 하고,

● 손 다치면, 손만 상하게 하고, 

● 발 다치면, 발만 상하게 하고 말라는 것입니다.

복수의 법이 아니라, 사랑의 법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III. 보복의 법

그럼,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 보복의 법은 어디서 온 걸까요?

(창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요즘 사람들의 복수와 라멕의 복수가 너무나 비슷합니다.

라멕은 가인의 후손인데, 최초로 두 아내를 맞이한 사람입니다.

● 라멕은 자기가 상처 입으면, 상대를 죽였고, 

● 자기가 상하면, 소년이라도 죽였습니다.

이런 복수법은 하나님이 주신 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한 가인의 후손이 행했던 법입니다.

 

IV. 눈눈이이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

우리 예수님은 이것에 대해 무어라 말씀하셨을까요?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구약에서는 같은 정도로만 상해를 입히라고 했는데요.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잖아요.

그 법의 정신은 죄를 용서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더 높은 수준의 규범을 주십니다.

●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도 대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 눈에는 눈으로 하는 최소한의 복수도 하지 말고, 악한자의 마음에 사랑으로 감동을 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라멕의 법(창 4)과 눈눈이이 법(출 21)과 왼뺨 법(마5)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나는 어떤 법을 따르며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 속에도 세 가지 잣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충고할 때는 마 5장을 내밀고,

내가 조금 화날 때는 출 21장을 사용하고,

많이 화날 때는 창 4장을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제게 어떤 법을 따르길 원하시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법을 따르려고 애써야 한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주님, 주님의 법을 따르도록 결단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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