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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1/09/23 창 21-24장 Publish on February 1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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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85회 작성일 23-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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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월) 창 21-24장

BCPC 식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제 주일 잘 보내셨는지요?


오늘 월요일에는 창 2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창 22장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을 오르는 장면입니다. 

그곳에서 “여호와 이레”의 경험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잖아요.

그런데, 116세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6살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진짜로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믿음장(히 11장)은 이것을 해석하면서,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합니다(히 11:17). 

그래서, 오늘 믿음으로 드린다는 관점으로 이 사건을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1. 믿음이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 우선 믿음이 아닌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믿음인 것은 아닙니다.

-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대책이 믿음인 것도 아닙니다. 

물론, 가끔은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믿음은 “알고 믿는 것”입니다.

- “느낌이나 감정”이 믿음인 것도 아닙니다.   

내 의지로 “믿습니다”를 외친다고 어거지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증거를 확신하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내적인 확신입니다.  


2) 무엇이 믿음일까요? 

히 11:1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쉬운 성경은 이것을 쉽게 풀어서 설명합니다. 

“(히 11:1, 쉬운)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12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15장에서는 언약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약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 gap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땅과 씨와 복을 주신다는 것인데,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현실은 땅 한 조각 소유하지 못한 나그네이고, 100살이 되어도 아들 하나 없는 신세입니다.  

이 현실과 성취 사이의 gap을 메꿔 주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확신하게 합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히 언약을 성취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보면서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할아버지 할머니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몸도,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았습니다. 

젊었을 때도 임신이 안되었는데, 지금 어떻게 임신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반드시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고 신뢰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정리를 하면, 믿음은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실 것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럼, 불신은 “현실을 보는 것”이 되겠죠.  


저는 믿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물론, 요 3:16같은 원초적인 질문이라면, 즉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느냐, 않믿느냐”의 질문이라면, 분명히 믿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같이, “약속을 바라보면 믿음”이고, “현실을 보면 불신”이라는 관점에서 믿느냐의 질문은 훨씬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현실의 어려움을 보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오늘도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꼭 붙들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2. 믿음의 내용

두 번째로, 아브라함이 믿은 내용이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뭘 믿고 어떻게 외아들을 죽이려고 모리아산으로 올라 갔을까요? 

창세기 본문은 별다른 힌트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에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두가지로 요약하는데요. 

바로 “천국”과 “부활 신앙” 입니다.


1) 아브라함의 천국 소망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정착해서 편안히 살 안식처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안식처는 이 땅의 안식처가 아니라, 하늘의 안식처였습니다. 

“(히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14-6절에서 언급하는 본향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본향도 옛날에 살던 갈대아 우르를 말하는게 아니라,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 즉 천국을 의미합니다. 


2)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 

아브라함과 부활 신앙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부활 신앙은 예수님 이후에 생긴 것 아닙니까? 

이 구약시대에 부활 신앙이라니요? 

그런데, 19절은 이것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증거합니다.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부활 신앙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이삭이 죽을지라도, 하나님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다시 살려 주실 것이다” 라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내리치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죽이려고 내리쳤습니다. 

심정적으론 이삭을 죽였고,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이 믿음은 이삭이 태어나는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도 사라도, 그 몸이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도 “아브라함이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았고,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롬 4:19). 

그런데, 하나님이 죽은 몸에서 생명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전에 하나님이 나의 죽은 몸에서 이삭의 생명을 주셨다. 그렇다면, 지금 이삭이 죽어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믿음을 다시 돌아 봅니다. 

지금 저의 믿음은 어떤 것인지... 

제가 가진 믿음이 이 땅에 기초한 믿음이 아니고, 제가 계산해서 생각하는 믿음도 아니길 원합니다. 

-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천국”과 “부활”에 기초한 믿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겠습니다. 

- 나그네로서 천국을 사모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죽음에서도 우리를 건지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기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바로 순종하여 실행에 옮겼습니다. 

믿을 때 바로 실천했습니다. 

창 22:3에 보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늦잠을 자지도, 머뭇거리지도,  억지로 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도 제 마음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순종하고, 즉시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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