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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5/15/23 욥 1-3장, “사단의 시험” Publish on May 15,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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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51회 작성일 23-05-1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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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특별히 묵상 편지를 두 번 보내드립니다. 

좀 전에 보내드린 것은 욥기에 대한 서론이었고, 

지금 보내드리는 것은 욥기 본문을 묵상하는 내용입니다. 


(참고로, 저는 개역한글 성경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욥기도 계속 개역한글판으로 설명 드립니다.

그런데 욥기는 개역한글 번역이 난해한 편입니다.

그래서 욥기를 새번역으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훨씬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 욥기 1장은 사단이 욥의 자녀와 재산으로 시험합니다.

■ 2장은 질병과 아내로 시험합니다.

■ 3장은 욥이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제가 집중하는 구절은 “까닭”과 “울타리”입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고소하는 장면입니다.


1. 까닭

(욥 1: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사단이 고소할 때, “욥이 아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할리 없다”고 고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그 까닭들을 제거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재산도, 자녀도, 아내도, 건강도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욥은 그 까닭들이 없어져도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하고

라고 하는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까닭없음...

저의 믿음에는 얼마나 까닭이 많은지, 얼마나 순전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걸까요?

좋은 일들과 유익과 건강 때문일까요?

벌 받을까 겁나기 때문이거나, 오랜 신앙 습관 때문일까요?


저도 까닭 없이, 이유없이, 바라는 것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까닭들 때문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갈대 같은 신앙 말고, 

바위처럼 묵직한 신앙이고 싶습니다.

그냥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경배받기에 합당한 분이기에 경배하고 싶습니다.

복을 주실 때 뿐 아니라, 복을 거둬가실 때에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게 말로는 잘되는데, 현실에선 참 어렵단 걸 매번 발견합니다.

제가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지 매번 확인합니다.

예전에 제가 산호세에 있을 때, 렌트 기한이 다 되어서, 새로 이사할 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산호세는 집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지역입니다.

오랫동안 고생을 하다가, 드디어 어느 집주인으로부터 계약하겠다는 이메일을 받았습 니다.

얼마나 기분 좋던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계약서 초본을 받았는데, 눈에 걸리는 조항들이 몇 개 보이는 겁니다. 

당장 마음이 불안해 졌습니다. 

“아, 너무 성급하게 감사했나?...”

그래서 다시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게 수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제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음.... 쓰고 보니, 제 모습이 갈대와 같네요. 

바람에 나는 겨처럼 가벼운 모습입니다. ㅠㅠ


2. 울타리

(욥 1: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사단이 욥을 고소했던 두 번째 이유는 산울(울타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있으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울타리를 제거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소인 것이죠. 


그럼, 산울(울타리)로 둘렀다는 것이 뭘까요?

울타리는 “욥의 이해의 범위”를 가리킵니다. 

울타리로 둘렀다는 것은 그동안 욥이 생각하는 이해의 범위를 만족시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이해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아니냐고 고소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은 이렇게 믿는 거지. 내가 이렇게 하니까, 이런 복을 주는 거지...” 하는 나름대로의 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잖아요?

그 틀을 고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는 우리 생각의 범주와 이해의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내면 곤란하다고 도전합니다. 

욥기를 묵상하면서 저의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이해의 범주, 통치의 깊이를 깨우치는 과정이 되면 되길 소망합니다.

 

3. 사단과 하나님의 대화를 다시 묵상합니다. 

1) 이것은 하나님이 욥을 억울하게 고통받게 하는 이유가 아닙니다.

이것은 욥에게 영광스러운 기회입니다.


지금, 사탄은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고, 핑계를 대려고 욥을 걸고넘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나님 경배하지 않고, 반역했으니까, 욥도 그럴 거라고, 까닭만 제거하면 자기와 똑같아 질 거라고 물귀신 작전을 쓰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욥이라는 한 인간에게 걸어 주시고 있습니다.

사실, 이 타이밍에서 하나님이 욥을 사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사단 네가 헛소리하지 마라. 니 속셈 다 안다.” 하시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홀로 옳으시고, 홀로 영광받기에 합당한 분이시잖아요. 인간을 통해 영광 받으실 필요도 없고, 뭔가를 증명하거나 보여주실 필요도 없잖아요.  

더구나,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인간은 한계와 변덕과 연약함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욥이라는 연약한 인간을 통해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자격없는 인간을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해주시는 (쉽게 말해, 끼워주시는) 것이 영광이고, 은혜입니다.


2) 욥기는 하나님이 언제나 옳고,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욥기의 주제가 신정론이라 했는데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내가 고난당하는 상황에서 조차도, 하나님은 나에게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내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나에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환경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동일하게(불변하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3) 이유없이 믿을 리 없다고 사탄이 도전할 때, 욥의 재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가진 이해의 범주가 제가 가진 이해의 범주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나 크고 넓으신지 측량조차,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해의 틀을 깨기 원치 않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을 주심으로서 욥이 가진 이해의 틀을 깨게 하십니다.

비록 고난당하는 게 고통스럽지만, 그 고난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이해의 범주를 깨고, 하나님의 범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어나 밖으로 나올 수 있듯이, 욥도 자기의 범주를 깨고 나오게 하셔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게 하시고, 더 깊게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범주는 어디인지 금방 확인이 됩니다.

아직도 매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주님,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아는 신앙이 되고 싶습니다.

마음 한쪽에선 껍질을 깨고, 울타리를 걷어내는 게 고통스러울까봐 겁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더 깊고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나가고 싶다는 소망도 있습니다.

제 눈을 열어 주소서.

 

제게 용기를 주셔서, 더 깊은 신앙으로 한걸음 나가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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