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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5/16/23 욥 4-5장, "엘리바스의 첫 번째 충고" Publish on May 17,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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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44회 작성일 23-05-17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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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평안하셨는지요?


오늘은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욥기에 나오는 “고난의 문제”를 먼저 짚어보고, 묵상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고난은 욥기 내내 나오는 주제이고, 우리에게도 아주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1) 어제 욥의 고난이 “자기의 반역을 정당화시키려는 사단”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시는 싸움이라고 했잖아요?

처음에 사단이 하나님께 시비를 걸고, 하나님과 욥에 대해 “신앙 내기”하는데요.

사단은 2장까지만 등장합니다. 

사단은 자신의 반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욥의 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조건들을 다 없애 버립니다. 

그런데도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지요. 

그 후로, 사단은 사라집니다. 

사단은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려고 시험을 주지만, 그 시험은 잠시 왔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42장까지 계속 나오십니다. 

3장부터 욥과 친구들의 긴 대화가 이어지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다 듣고 계셨고, 그들을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잠시 왔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붙드시려는 싸움을 끝까지 포기치 않고, 결코 놓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2) 그렇다면, 고난이 욥(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인간에게 주신 가진 독특한 능력인 “자유의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게 당연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자율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하는가?” 에 대한 싸움입니다.

자유의지 하면, 선악과가 제일 먼저 떠오르잖아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데 자유의지를 사용해 버립니다. 

비슷하게, 욥기의 고난 문제도 자유의지의 싸움입니다. 

사단은 외적인 고난을 통해 욥이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떠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욥은 한탄과 비명이 쏟아지는 극심한 고난 중에도,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사단의 패배입니다.) 


이 묵상을 하면서, 저는 고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돌아봅니다. 

저의 자유의지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저도 제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존재가 되고 싶습 니다.

 

오늘은 욥기 4~5장을 읽을 차례인데요.

4~5장은 엘리바스의 충고이고, 

내일 읽을 6-7장은 욥의 대답입니다.


이제 욥의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게, 친구들의 대화입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욥이 옳다고 하셨으니, 친구들이 틀린 거잖아요?

그런데 친구들 말을 읽어보면,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

아니, 그 말도 다 맞는 말처럼 보이거든요…….

그런데 왜 틀린 것인지…. 

여기서 우리가 헷갈립니다. 


간단히 말하면, 친구들은 인과응보(원인과 결과, 인과율)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공연히 네게 재앙을 줬을 리 없다. 

(부지불식간에라도)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을 거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들이지요.)


I. 엘리바스의 충고

친구 중에 엘리바스가 처음으로 말을 꺼내는데요 (4~5장).

a.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근거해서 욥을 정죄합니다. 

(욥 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욥 4: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처음에 친구들이 왔을 때, 욥의 처참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욥이 고난당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욥의 모습을 보니,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장에서 욥이 하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불손하게 들립니다.

욥이 감히 하나님께 불평하듯이 말하였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은 더욱 확신합니다.

욥이 잘못한 것이라고…

(평소의 인과응보에 대한 확신+ 욥의 불손한 태도= 욥이 잘못했다는 확신)


그래서 엘리바스가 먼저 욥에게 충고합니다.

엘리바스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게 세상 이치라고 전제합니다.

죄의 씨를 뿌리면, 멸망의 열매를 거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보니, 네가 지금 독을 거두고 있다.

그건 네가 독을 뿌렸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논리입니다. 


b. 또한, 자기의 영적 경험(신비 체험)을 통해 욥을 정죄합니다.

엘리바스는 신적인 존재를 만나고 뼈마디가 흔들리고 털이 쭈뼛 서는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냐?”고 질문합니다(욥 4:17). 

욥이 무죄하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너도 죄인이기 때문에 전능자에게 징계 받고 있다고(5:17),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다(5:8)고, 그러면 다시 평안해지고, 자손도 많아질 거(5:24-25)라고 합니다.


II. 묵상

1. 내일 읽을 6-7장에 나오겠지만, 엘리바스의 충고는 겉으로 보기엔 너무 옳은 말이었 지만, 실제로 욥에겐 적용되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잖아요.

혹시 저는 저의 인간적인 확신으로 말할 때가 없는지 돌아봅니다.

저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아프게 하는 경우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2. 또한, 엘리바스는 너무나도 자기 확신에 차 있습니다.

자기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대화가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저도 제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더욱 겸손한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더욱 양보하려고 애써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라 했는데요.

주님의 마음과 자세를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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