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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5/19/23 욥 11~14장, “욥과 소발의 첫 번째 대화” Publish on May 19,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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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7회 작성일 23-05-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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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11~14장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욥과 소발이 논쟁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욥과 친구들 간의 1차 논쟁(욥 4~14장)”중 일부분입니다.


친구들이 충고를 시작하는 부분을 보면, 그들의 성격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표준새번역은 이것을 실감나게 번역했습니다.

■ 엘리바스- “누가 네게 말을 걸면, 너는 짜증스럽겠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아라(욥 4:2-3).”

■ 빌닷-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 거센 바람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구나(욥 8:2).” 

■ 소발- “네가 하는 헛소리를 듣고서, 어느 누가 잠잠할 수 있겠느냐?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 (욥 11:2)”


I. 소발의 충고 (11장)

앞에서 친구들이 정죄하니까, 욥이 항변했잖아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소발도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닷보다 더 크게 화냅니다. 

시작부터 격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흥분하다 보니, 논리는 앞의 두 친구 보다 약합니다.


11장 2절을 요즘 식으로 하면, “아~~, 거참 말 많네”입니다(11:2).

“그냥 깔끔하게 회개하지…. 회개하면 복 받는데, 왜 이리 변명이 많냐”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욥을 자신의 잣대로 단호하게 가위질합니다.

욥을 수다쟁이요(2), 자랑꾼이요(3a), 남을 비웃는 자요(3b), 스스로 깨끗하다고 착각하는 자(4)로 낙인찍습니다.

“네가 깨끗하다고, 온전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너의 착각이다. 하나님이 네 죄를 잊게 해주신 거다.” 

즉, 네가 기억 못 할 뿐, 죄가 없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11:4-6).

“네가 아무리 의인이라고 생각해도 그건 너의 착각이다. 너는 분명한 죄인이다. 빨리 회개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크신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척하지 말라고 합니다(7). 

하나님의 지혜는 하늘보다 높고(높이), 스올보다 깊고(깊이), 땅끝까지의 길이보다 길고 (길이), 바다보다 넓다(넓이)고 합니다(8-9).

그러니,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한낱 허망한(텅 빈) 빈껍데기일 뿐이다(11-12)라고 합니다.

특히, 12절은 네가 머리가 텅 비고 무식한 것이 마치 ‘고집 세고 멍청한 나귀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듣기에 상당히 기분 나빠지는 인격 모독입니다. 

(충고라 쓰고, 욕이라 읽는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세 친구가 공통으로 욥을 정죄한 뒤에 회개를 요구하는데요. 

엘리바스와 빌닷은 욥이 자신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으라’라고 권면 했잖아요(5:8, 8:5)? 

반면에, 소발은 더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 손을 뻗고, 죄악을 멀리 버리라고 합니다(11:13-14).

그러면, 번영한다고 합니다.

두려움과 환란은 끝나고, 다시 생명과 희망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15-19).


소발의 말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욥아, 말이면 다냐? 네가 뭘 알아!!! 우리 하나님은 다 아신단 말이야! 이 멍청한 X야. 그러니, 정신 차리고, 회개해라. 그러면 복 받는다.” 


소발의 말들도 한 문장씩 떼어서 읽으면, 맞는 말이고, 신앙적인 말들입니다. 

(맞는 말 대잔치입니다.)

그런데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1) 욥의 상황에 맞지 않고요. 

2) 자기 확신이 하나님의 뜻인 줄 착각했습니다. 

3) 친구의 아픔을 위로하거나 공감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4) 교리적 지식으로 차갑게 정죄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의학지식이 아무리 많더라도, 진단을 잘못하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잖 아요. 

오히려 그 지식 때문에, 더 많은 오류를 범할 뿐이잖아요. (즉, 돌팔이…)

혹시 저는 그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도 성도들을 상담할 때가 많은데요.

어줍잖은 지식으로 아는 척하고, 입바른 소리만 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함부로 정죄하진 않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봅니다.

특히, 회개하란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라리 지식이 부족해도,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려고 조심하고, 또 노력해야겠습 니다.


II. 욥의 응답 (12~13장)

소발의 말에 욥이 응답합니다.

“(욥 12:2)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욥 12:3)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소발의 말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욥도 비아냥거림으로 응수합니다.

요즘 식으로 고쳐 말하면, “눼눼, 니들만 똑똑하시네요. 니들이 죽으면, 세상에 똑똑한 사람 다 죽은 것이겠네요…. 근데, 나도 니들만큼 알거든? 니들이 한 말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냐?”는 말입니다.

(맞는 말 대잔치가 아니라, 뻔 한 말 대잔치, 헛소리 대잔치였단 말입니다.)


소발이 하늘과 스올과 땅 끝과 바다를 언급했었는데요(11:8-9).

그런데 그런 지혜는 땅의 짐승들, 공중의 새들, 땅(지하), 바다의 물고기들도 다 알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12:7-10).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는 원리와 다르게 작동할 때도 있다’는 것이죠(17-25).

한 마디로, “너희는 위로한다고 말하면서 저주하는 거짓말쟁이다.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 는 돌팔이 의사이다. 차라리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고 합니다(13:4-5).

“유식해 보이려고 온갖 격언, 속담을 갖다 붙이고 있구나. 하지만, 너희 말은 다 헛소리 니까, 제발 입 다물어라”라고 합니다(13:12-13).


앞에서 소발이 욥에게 “말이 많으니(11:2)”라고 했는데요. 

이제는 욥이 “너희는 잠잠하고(13:13)”라고 말합니다.

욥도 감정적으로 많이 격앙되어 있습니다.

마치 피해자가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해야 하는 상황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 지요.

(그런데 이거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이 느낌은….)


저는 욥의 말 중에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12:5)”한다는 구절에 자꾸 눈이 갑니다. 

욥을 비난하는 친구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남의 입장을 모르니까, 입바른 소리만 하고, 쉽게 비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빵 없으면, 케익 먹으면 되지’ 하는 말이나 비슷합니다.

또는 “저 정도 고난도 못 이기나? 저럴 때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못하고 있지?”라고 섣부른 코칭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혹시 제가 남의 입장을 모른 채, 너무 쉽게 비난하고 정죄하진 않는지 돌아봅니다.

책상에 앉아서 세상을 다 아는 체하고 있진 않은지 두렵습니다.

성경 구절 몇 개 아는 것으로 사람들의 살을 도려내고 있진 않은지 두렵습니다.

마치 바리새인처럼, 남을 정죄하는 전문가가 되어 있진 않은지 두렵습니다.


제가 유학할 때, 유학생들에게 참 잘해주신 교수님이 계셨어요.

유학생들이 문화와 언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고, 배려해 주셨는데요. 

알고 보니, 그분이 선교사 출신이셨어요.

본인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본 경험이 있으니, 타국살이와 공부의 어려움을 아시고 배려해 주신 거였습니다.

저도 우리 성도들의 상황과 입장을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배려 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III. 욥의 기도 (13:20-14장) 

한참 논쟁하던 욥이 13:20부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길게 이어집니다.

“속에서 불이 나서, 이 친구들하곤 더는 말 못 하겠다”는 거겠지요.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면서, 답답한 속마음을 아룁니다.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13:23).”

기도는 욥이 고난을 견디는 숨구멍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낼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짜증을 내더라도,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비참한 고통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고,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소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욥도 그러합니다. 

기도하면서 소망을 품게 됩니다.

“하나님,

나무가 찍혀도 다시 움이 나고 새순이 올라오잖습니까?

저도 저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14:7-9, 14).”라고 기도합니다.


욥이 고난 속에서 소망을 얻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 때문입니다.

저도 기도하면서, 저의 고난을 이겨나가고, 고난 속에서 오히려 소망을 품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주여, 

저도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돌팔이 의사처럼 되지 말게 하시고, 성도들을 품게 하시고, 역지사지의 마음을 품게 해주시옵소서.

무엇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소망을 붙들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새 힘 얻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wQKaSikPm_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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