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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5/17/23 욥 6-7장,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대답” Publish on May 17,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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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2회 작성일 23-05-1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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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평안하셨는지요?

오늘은 욥 6-7장을 읽을 차례입니다.


어제 읽은 욥기 4~5장은 엘리바스가 욥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충고하는 부분이었는데요. 

a. 엘리바스는 인과응보(원인과 결과, 인과율)를 말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b. 또한, 자기의 영적 경험(신비 체험)을 통해 욥을 정죄했습니다.

신적인 존재를 만나면 뼈마디가 흔들리고 털이 쭈뼛 서는데,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냐?”고 했습니다. 

욥이 무죄하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엘리바스의 이런 충고는 욥을 아프게 하는 말들의 연속입니다.


I. 욥의 대답

오늘 읽는 6-7장은 엘리바스의 충고에 대해 욥이 대답하는 장면입니다. 

엘리바스 입장에서는 맞는 말에 자기 확신까지 더 했으니, 얼마나 더 맞는 말을 한 것입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 말이 욥의 상황엔 적용될 수 없는 말이라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섣부른 충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욥의 대답에서 나옵니다.


이 말은 들은 욥은 너무 답답하고 억울합니다.

자기에겐 그런 죄악된 원인이 없거든요.

이미 혹시라도 지었을지 모를 죄를 위해서도, 미리 제사를 지낼 정도였거든요(1:5).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고, 불의하지도 않다고 항변합니다(6:10, 29).


그리고 친구들의 입바른 말이 너무 아프게 찔러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욥 6:25, 개역)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 그렇지만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 이뇨?

그런데 개역개정판 성경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구절이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역개정 성경에는 

(욥 6:25, 개역개정)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 이냐?

라고 번역되어 있거든요.  


언뜻 보면, 두 번역판의 번역이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요.  

유역한지와 고통스러운 고로, 다른 말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은 둘 다 가능한 번역입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 단어(marats)의 뜻이 1) painful 2) violent이거든요. 

아주 폭력적이어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친구가 옳은 말이라고 하는 충고가 겉으로 볼 때, 상당히 맞는 말이지만, 욥에게는 폭력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듣고 있자니,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욥의 대답 중에 다른 구절 하나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욥 7:15, 개역)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 이다.

개역 한글 번역은 너무 직역이어서, 표현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구절은 개역 개정판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욥 7: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또는, 새번역판처럼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욥 7:15)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 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육체의 고통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친구의 충고(라고 쓰고 정죄라고 읽음)가 더해지니,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죽는 게 더 좋겠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가 하는 말 자체는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말은 아니었고, 욥의 상황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맞지 않는 정죄가 아픈 사람을 더욱 아프게 만듭니다.

얕은 지식으로 섣불리 아는 체하고, 정죄하느라고, 위로는커녕 더 아프게 찔러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습니다.


묵상하다 보니, 제가 바로 이렇게 재수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내가 가끔 제게 속을 털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여보, 실은…….”

그때, 저는 자주 그 얘길 끝까지 들어주지 않습니다. 

중간에 말을 가로챕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정답을 얘기합니다. 

그럼 외칩니다.

“제발 정답 좀 말하지 말라고. 나도 정답은 안다고!”

(써놓고 보니, 제가 생각해도 제가 재수 없네요. 여보, 미안해요…. ^ ^;;)

요즘은 정답을 말하기보단, 공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주여,

제가 가진 “자기 의”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만 잘난 줄 아는 교만과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리고 친구의 아픔을 공감하게 하시고, 그것을 품고 같이 우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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