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4/23 호 5-7장, "7장 화덕 비유" > 묵상편지

본문 바로가기

묵상편지

09/04/23 호 5-7장, "7장 화덕 비유" Publish on September 06,2023 | 관리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0회 작성일 23-09-06 13:08

본문

BCPC 식구 여러분,  

오늘 우리는 호세아 7장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호세아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전반부인 1~3장에선 고멜을 향한 호세아의 사랑이 나오고요.

* 후반부인 4장 이후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옵니다.

그중에, 호세아 7장은 이스라엘의 죄악된 모습을 3가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1) 불타는 화덕 2) 뒤집지 않은 전병 3) 비둘기

오늘은 첫 번째 비유인 불타는 화덕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호 7:6, 개역) 저희는 엎드리어 기다릴 때에 그 마음을 화덕 같이 예비하니, 마치 빵 만드는 자가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의 일어나는 것 같도다.


6절은 개역한글 번역으로 읽으면 금방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표준 새번역에서 풀어서 해석한 것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호 7:6, 새번역) 새 왕을 세우려는 자들의 마음은 빵 굽는 화덕처럼 달아오르고, 그들은 음모를 품고 왕에게 접근한다. 밤새 그들의 열정을 부풀리고 있다가 아침에 맹렬하게 불꽃을 피워 올린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을 화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화덕은 쉽게 말해, 숯불이나 장작으로 굽는 오븐 같은 것입니다.

옛날 한국 부엌에 아궁이가 있었듯이, 중동에는 화덕이 있습니다.

그 화덕에서 피타(pita)라고 불리는 플렛 브레드(flat bread)를 굽습니다.


성경도 불이 자주 나옵니다.

■ 성경에서 불이라고 하면, 먼저 성령의 불이 생각납니다.

좋은 의미에서 불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의 불은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불은 간교한 마음에서 피어나는 불입니다.


화덕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겉에선 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불이 타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도 겉으론 영적이고, 종교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간음의 불덩어리, 거짓과 술수의 불덩어리, 욕망과 야망의 불덩어리를 품고 있습니다.

뜨거운 불덩이를 품고선, 거짓말하고, 간음하고, 악한 교제를 했습니다(7:3-5).

너무나 이중적이었습니다.


3절과 7절에는 이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잘 대조되고 있습니다.

■ “(호 7:3) 저희가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방백들을 기쁘게 하도다.”

■ “(호 7:7) 저희가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필요에 따라 왕에게 아첨하다가, 또 다른 필요가 생기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호세아(BC 758-725)가 활동하던 당시의 북이스라엘 역사가 딱 그 지경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왕이 6번이나 바뀌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794-752) 때는 40여 년을 통치하면서 이스라엘이 중흥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 여섯 왕이 갈립니다.

그 역사를 보면 기가 찹니다. 

1. 여로보암 2세를 이은 스가랴(752)는 6개월 만에 왕위를 뺏깁니다. 

2. 그다음 살룸(751)도 1개월밖에 왕 노릇 하지 못했습니다. 

3. 그다음 므나헴(751-741)은 그나마 10년간 왕을 했지만,

4. 그 뒤에 브가히야(740-739)는 겨우 2년밖에 왕위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5. 베가(751-731)가 왕위를 빼앗아 20년을 지냈습니다.

6. 그리고 마지막에 호세아(731-722)가 다시 왕위를 찬탈해서 9년을 통치하다가 나라가 망했습니다. 


신하들은 그 전날에 왕에게 아첨했다가, 다음날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킬 때는 다들 이유가 좋습니다.

“지금 왕이 하나님 앞에서 악하다. 그래서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가 왕이 되면, 자기도 똑같이 악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다른 신하에게 똑같은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중성이 간교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내세워 자기를 정당화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는 것이 간교함이고, 

어제까지 아첨하다가 오늘 때가 되면 반역해버리는 것이 간교함이었습니다.

 

제 속에도 두 가지 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간교함의 화덕과 성령의 불입니다.

한편에는, 욕심과 정욕과 분노와 상처와 복수와 위선과 이중성으로 불타는 화덕이 있습니다.

다른 편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정이 타오르는 성령의 불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곳에선, 옛 속성과 새 속성, 옛사람과 새사람,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같은 용어로 표현하기도 하지요.)


언뜻 보면, 둘 다 불이기 때문에, 비슷해 보입니다.

■ 이것이 인간적인 열심인지 하나님의 열심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 저의 욕망과 야망을 하나님을 위한 비전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둘은 확연히 다릅니다.

간교의 화덕을 품지 말고, 성령의 불을 품고 살기 원합니다.

제 속에 있는 더러운 화덕을 내버리기 원합니다.

화덕이 속삭이는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원합니다.

저의 눈과 귀를 온전히 성령으로 향하고, 그 불에 집중하기 원합니다.


집중이라 하니까, 캠프파이어에서 불멍하는 것이 생각나는데요.

(참고로, 불멍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인데요. 

잡생각 하지 않고 불만 멍하게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저는 캠핑을 좋아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즐기는 것은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바쁠 때는 텐트도 치지 않고, 밤새 불만 때다가 새벽에 돌아올 때도 있었습니다.

밤에 장작을 태우면서 불멍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_^)

어두운 밤에 불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히 거기에 눈이 집중하게 됩니다.

점차 거기에 마음을 뺏기고, 빠지게 되고, 잡생각이 사라지고, 멍해지는 것입니다.

캠프파이어에서 불멍하듯이, 일상의 삶에서도 우리는 불을 바라보며 삽니다.

그리고 그 불에 집중하게 되고, 빠져들게 됩니다.


캠프파이어에선 아무 불이건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신앙과 영성에선 어느 불을 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니까요.

간교의 화덕을 선택하지 말고, 성령의 불을 선택해야겠습니다.

성령의 불만 바라보고, 거기에만 집중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불타기 원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의 은사를 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중동의 화덕

 

https://obs.line-scdn.net/0hCFlpTOtfHGlRCTRBodZjPmtfHwZiZQ9qNT9Ndg5nQl0oPAxoOGZaXH0KRQl1OVs3OGxWCn0LB1gvMAk8aGla/w64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