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4/23 욘 1~4장, “1장 여호와의 낯을 피하는 요나”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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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09/14/23 욘 1~4장, “1장 여호와의 낯을 피하는 요나” Publish on September 14,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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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8회 작성일 23-09-14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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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요나서 1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요나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북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앗수르의 니느웨를 대상으로 예언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호세아와 아모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요나서는 이야기체로 구성된 예언서입니다.

읽기 쉬우면서도, 담겨있는 메시지가 엄청 많은 성경이지요.

오늘은 1장 3절에 집중해서 묵상하겠습니다.

“(욘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I.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요나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한 사람이고, 그 말씀을 위해서 어떤 난관이라도 다 감수 하고, 극복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나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피해 도망가고 있습니다.

왜 도망갈까요? 


1) 선민의식 때문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누구나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이방에 가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습 니다.

아마 요나는 이 명령을 받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명령인가?’ 하며 당황했을 것입니다.


2) 앗수르(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치 않았습니다.

앗수르는 오랫동안 이웃 나라들에 대하여 매우 포학하게 대한 잔인한 나라였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점령한 지역은 예외 없이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아주 악독한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습니다.

얼마나 지독했는지, 그들의 악독함이 하나님께 상달 되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욥 4:2). 

그러니, 요나는 그들이 용서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앗수르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받을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려고 했습니다.

 

3) 상반되는 메시지

니느웨가 회개치 않으면, 결국 심판받고 멸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면, 앗수르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더 부강해질 것입니다. 

제국이 부강해지면, 변두리의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은 당연히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침공을 받을 수도 있고, 외교적인 압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자기가 선포해 왔던 메시지와도 반대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4장에 보면, 이전에 요나가 선포했던 메시지가 나옵니다.

(왕하 14:2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 까지 하였으니,


이전에 요나는 이스라엘이 크게 부강해질 거라고, 솔로몬 이후로 가장 큰 나라가 될 거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당대에 이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전에 받은 메시지와 전혀 상반되는 메시지입니다.

두 메시지가 충돌됩니다. 

헷갈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갈등을 만난 것이지요.

그래서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갈등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하고, 배우고, 알았던 것과 막상 지금 닥치는 상황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도 당황되곤 합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II.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1. “마침”  

요즘은 미국에서 한국 가는 것이 별로 큰 일이 아닙니다. 

여러 항공사의 비행기중에서, 나의 일정에 맞추어 선택해서 갈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100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한국 가는 것은 아주 큰일이었습니다. 

지금부터 2700년 전에, 요나는 멀리 떨어진 땅으로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먼 나라로 가는 배가 얼마나 자주 있었을까요?

배를 만나려면, 몇 주나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항구로 내려가자마자, “마침” 배가 있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입니다. 

일이 형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형통이 형통이 아닙니다.

지금 잘나간다고, 그게 잘나가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지금 잘되면, 하나님이 돕는 증거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요나를 보십시오.

우리가 알다시피, 요나는 지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게 아니지요. 

그래도 “때마침” 배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이 마침 배를 만나게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큰 바다에 나가서, 빨리 폭풍을 주시고, 빨리 되돌리려고, 지금 일시적인 형통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떤지 돌아봅니다. 

저도 지금 잘 되는 것 자체에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배를 만나는 게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해 봅니다.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형통한 것에, 지금 일이 잘 풀리는 것에 너무 목매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핵심이니까요. 

가스펠송이 기억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주님 말씀이 기준이 되고, 제가 움직이는 신호가 되기 원합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고, 잘 몰라도 순종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은 니느웨였지만, 요나는 자기 생각에 매여서 그곳에 가기 싫었습 니다.

나의 니느웨는 어디일까요?

내 맘에 도전하시지만, 내가 가기 싫은 곳은 어디일까요?

오늘 그곳이 어디인지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는 것도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1zPGJU_V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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