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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0/21/23 눅 16~18장, “17장 사마리아 나병환자” Publish on October 2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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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5회 작성일 23-10-2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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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눅 17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오늘은 개역개정판 성경으로 묵상하겠습니다.

문둥병자란 단어 대신에, 나병환자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4~19장은 예수님이 공생애 3년째 가을에 초막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에 가시 던 일이 나옵니다. 

17장 앞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셨고요. 

그 뒤에, 사마리아에서 나병환자들을 만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눅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이때 예수님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다니는 요단강 동편길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바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나병 병자 10명을 만납니다.


제가 예전에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 공부하다가, 애양원 역사를 보았는데요.  

집단 학살이 몇 차례나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라는 이유로 학대하다가, 그냥 다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이게 겨우 50년 전 한국의 인권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2000년 전 유대 땅에서는 어떠했겠습니까?  

나병 환자들은 치료법의 부족함 때문에, 율법 때문에, 사회적 편견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몇 가지 묵상을 하게 됩니다. 


I.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병 병자는 좀 범위가 넓은 말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나병”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악성 피부병”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나병이라고 판정을 받으면 이들의 인생은 그대로 끝났습니다. 

당시에 나병은 불치병이었습니다. 

위생상에도 문제가 되었고, 율법에도 걸렸습니다. 

이들은 마을에 거하지 못합니다. 

사람들과 접촉하지도 못합니다. 

마치 인도의 불가촉천민 같은 신세가 됩니다.

“(눅 17:12) ...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멀리 서서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멀리 섰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들도 고침 받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눅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멀리 서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이들은 자기들이 도저히 인간적인 연민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헤세드)에 기대어 외치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 제발 하나님의 심정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 주시길 바라는 사람들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세리가 서서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합니까? 

세리는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했습니다.

●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소경 거지인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 마가복음 6장에서 주님은 큰 무리가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함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 셨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 마가복음 1장에선 병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 니다.

● 누가복음 7장에선 주님이 나인성의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 셨습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본문에서도 주님이 10명의 나병 환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셨을 때, 그들은 고침 받았습 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라” 하셨고, 가는 도중 낫게 되었습니다. 

  

II.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10명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상황은 갑자기 달라집니다. 

10명이 고침을 받았는데, 9명은 다 각기 제 길로 가버립니다. 

예수님보다 자기 병 나은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오직 사마리아인 나병 환자만 홀로 예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 돌렸고,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눅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십니다.

앞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이 바다에라도 뽕나무를 심을 수 있다”라고, “그 작은 믿음이라도 기적 같은 역사를 만들어 낸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마리아인 나병 환자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9명의 병자는 병은 나았을지 모르지만, 그 영혼은 고침 받지 못했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병이 낫는 역사를 통해 주님을 믿게 되고, 경배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믿음은 저에게도 중요합니다.

저도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 제목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바로 믿고, 더 깊이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진정한 믿음을 주시고, 더 큰 믿음을 주시고, 더 깊고 넓은 구원을 경험하는 믿음 주시길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한, 저도 가난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구합니다. 

주님께 외칩니다.

주여, 저도 불쌍히 여기소서. 

제 모습으로는 불쌍히 여김 받을 구석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 공로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해서 구하오니, 제발 불쌍히 여기소서.

그래서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시고, 주님을 더욱 굳게 믿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g5n4uSXddAk&t=2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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