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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0/22/23 눅 19~21장, “19장 삭개오” Publish on October 24,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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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9회 작성일 23-10-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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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눅 19장,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시는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스토리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만, 읽을수록 더 깊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1.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먼저 다가갔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로마는 외모와 육체를 중요시하던 사회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키 작은 식민지 백성이 세무서장이 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습 니까?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나쁜 짓을 해가면서, 드디어 그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당시 로마는 골치 아픈 식민지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했습니다. 

지역마다 세금 관리자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세금만 바치면 얼마를 더 걷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 정부가 세무서장에게 그해 세금을 100만 불이라고 정해 줍니다. 

그리고 연말에 100만 불을 받으면, 그가 200만 불을 걷든 300만 불을 걷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입장에선 그 해 정해놓은 세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입장에서 삭개오는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였습니다. 

합법적인 강도였습니다. 

최대한 많이 착취했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삭개오는 식민지 정부의 높은 관리였습니다. 

재력과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치레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돈과 권력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믿음도 없고, 사랑도 없고, 소망도 없고, 친구도 없었습니다. 

공허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귀가 번쩍 뜨였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막상 예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 군중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들을 뚫고 예수님께 갈 수가 없었습니다.

● 또한, 자기 자신도 예수님 앞에 떳떳하게 나설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라도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게 삭개오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등장하십니다.

“(눅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대화도 삭개오가 먼저 말을 건 것이 아니었습니다.

(눅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 삭개오 앞에서 걸음을 멈추신 것도 예수님이셨고, 

● 나무 위를 쳐다보신 것도 예수님이셨고,

● 먼저 말을 걸어 주신 것도 예수님이셨고, 

● 그 집에 머물겠다고 제안하신 것도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삭개오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다가가 주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다가가는 것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II. 예수님은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눅 19: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사랑은 이름을 불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히 누구를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 전체를 의미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삭개오를 처음 만나시는 장면입니다. 

이전에 서로 안면 있는 사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계십니다.

그의 이름을 이미 알고 계셨단 말입니다.

이것은 삭개오의 이름만 미리 안게 아니라, 그 인생사와 그 속사정까지도 다 안다는 의미입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삭개오야” 하는 것은 “내가 너를 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네가 지금 어떤 형편이고, 어떤 마음인지 내가 다 안다.” 하시는 것입니다. 


삭개오란 이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우리 성경에는 이 사람을 삭개오라고 부르는데요. 

원래 이름은 Zaccheus입니다.

us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삭개오의 원래 히브리식 이름은 Zachai입니다. 

우리식으로 고치면 “삭개”가 되겠지요? 

이름 뜻은 “순결, 청결”입니다. 

삭개오의 아버지는 삭개오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정결하게 살라고, 신앙적인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름값을 하면서 살지 못했습니다. 

그 이름도 Zachai(삭개)에서 Zaccheus(삭개오)로 바꾸었습니다. 

왜 이름을 바꿨을까요?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출세하기 원했겠지요. 

하나님 앞에서 순결해야 할 인생이 돈과 권력과 출세를 추구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온갖 나쁜 짓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리장(여리고 지역 세관의 보스)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 외로웠습니다.

■ 인생이 공허했습니다. 

■ 죄인이란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 겉으론 화려했지만, 속으론 울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삭개오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기대하고,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의 모습은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 공부 잘하고, 비즈니스 잘하고, 성공도 했는데, 여전히 공허하고 불행한 분들이 많습 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삭개오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삭개오를 사랑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삭개오야” 하는 것은 그런 삭개오의 상황과 내면까지도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가스펠송 중에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하는 가사 그대로입니다.

예수님이 저도 그렇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제게도 먼저 다가와 주셨고, 이름을 불러 주셨고, 저의 전인격을 사랑해 주셨습 니다.

저도 주님께 마음 열고 다가갑니다.

주여 오소서!


III. 예수님은 삭개오를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눅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입니다.

왜 예루살렘으로 가실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서 가십니다.

● 개인적으로 보면,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굉장히 비장한 순간입니다. 

● 구속사적으로 생각해도, 하나님 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사사로운 일에, 하찮은 개인적인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시는 도중에 여리고에서 삭개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더구나 그 집에 머물겠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삭개오에게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집에 구원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고, 지금 나와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셨고,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한 영혼을 사랑하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 바쁜 일을 핑계로 한 영혼을 신경 쓰고, 그 영혼을 돌보는 일을 등한시 하진 않는지 돌아봅니다. 

오늘 제게 붙여주시는 삭개오는 누구인지 찾아보고, 그 영혼을 돌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 마음을 닮은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6GZutZn_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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