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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0/25/23 3~4장, “3장 니고데모” Publish on October 25,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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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1회 작성일 23-10-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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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요 3장, 니고데모에 대해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첫 번째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첫 방문에서 성전을 뒤집어엎으셨습니다.

그리고 8개월 정도 긴 시간을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많은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긴 체류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나열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밤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대화합니다. 

그는 학식과 권력과 인품과 재물에 있어서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Nicodemus(니고데모)라는 헬라식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아 헬라 문화에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몰약과 향품을 100근이나 가져올 만큼 부자였습니다. 

밤에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거듭남과 영생”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1. 니고데모의 핵심- 어떻게 거듭나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거듭남”입니다. 

이 부분에서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니고데모는 동문서답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지요. ^^;;


1) 이 대화를 문법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거듭”은 1) “다시”라는 뜻도 있지만, 2) “위로부터”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것은 1) “다시 태어난다”는 뜻도 될 수 있고, 2) “하늘로부터 태어 난다”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 난다” 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2) 이것을 문화적인 면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니고데모 당시에 “거듭난다”는 말은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쓰던 말이었 습니다.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거듭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뭔가 탄생이 잘못되었나? 그래서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니고데모는 똑똑했고 많이 배웠지만, 자기의 문화적이고, 지식적인 틀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3) 이 대화에서 가장 핵심은 거듭남이 영적인 의미냐, 육적인 의미냐 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하나님 나라는 매우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영혼이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했던 것입 니다.

또한, 니고데모는 육체적인 거듭남으로 이해했기에, 육체가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 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듭남을 영적으로 거듭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니고데모는 오해했고 동문서답을 해버린 것입니다. 


저도 혹시 니고데모처럼 제 생각과 경험과 지식과 문화적인 틀 속에 갇혀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그래서 그 틀이 더 성숙한 신앙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자유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얽매이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주님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2. 예수님의 핵심 - 물과 성령

예수님은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다시 태어나야, 곧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예수께서 제시하신 해결책입니다.

그 방법은 물과 성령입니다.

(요 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물과 성령을 연관시키십니다.

구약 성경에는 물과 성령이 자주 함께 등장합니다. 

거의 동의어 같은 역할을 합니다. 


1) 창조 때에 성령은 물 위에 계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의 신(성령)이 수면(물)에 운행하셨습니다(창1:1-2).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이루실 때 “물과 성령”이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듭남을 영적인 재창조로 설명하십니다. 

창조하실 때 성령이 물 위에 운행하였던 것처럼, 영적인 재창조(거듭남)에도 성령과 물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 선지서에서 물은 우리를 정결케 하고, 새 영을 부으시는 통로였습니다(겔 36: 25-27).

하나님은 맑은 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신 후에, 새 영을 부어주시고, 새 마음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겔 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그렇게 새 영을 받게 되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가 살아나게 됩니다 (겔 37장).

물과 성령이 역사하면, 죽어서 말라비틀어진 마른 뼈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저에게 적용할 핵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제 생각과 삶의 변화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던 사람이 영적인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육신의 쾌락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을 추구하던 사람이 말씀에서 생명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니고데모와 같이 돈 많고, 권력 많고, 학식이 높아지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면, 생각이 바뀝니다.

추구하는 성공이 바뀝니다.

나의 삶의 목적이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임을 인정합니다. 

내가 빵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함을 고백합니다. 

American Dream을 이루고, 수십만 불의 연봉을 받으면서,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소망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바뀝니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인생의 목표와 가치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저도 성령을 사모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기 원합니다.

물론, 예전에 예수님을 영접했고,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새롭게 되고 싶습니다.

과거적 구원과 현재적 구원, 미래적 구원을 이뤄나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나의 구원의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빛 안에서 구원을 이루며 살아가기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RoW-ZWbL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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