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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0/28/23 요 10-12장, “12장 예루살렘 입성과 나사로의 역할” Publish on October 28,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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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8회 작성일 23-10-2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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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요 12장, 예수님이 입성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많은 백성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호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나사로가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고 계십 니까?  

오늘 묵상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나사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I. 나사로 때문에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인기가 많으셨던 것은 사실인데요.

그런데 종려주일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환호를 받으셨습니다.

백성들이 왜 그렇게 열렬하게 예수님을 환영했을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때는 유월절 5일전이었습니다.

유월절에는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 습니다.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니까, 성안에서 다 잘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성 동쪽에 있는 감람산에, 임시로 텐트를 치고 지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여정이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베다니에서 나귀를 타신 장면만 나옵니다.

■ 그런데 요한은 이 여정을 더 상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나사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요 12:9) 유대 사람들이 예수가 거기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크게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예수를 보려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를 보려는 것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살아난 나사로를 직접 만났으니까요.

헛소문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11절)

(요 12:11) 그것은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 사람이 떨어져 나가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 이다.

그런 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12절)

(요 12:12) 다음날에는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린 능력의 종이잖아요?

“저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이다. 메시야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II. 나사로 입장

여기에서 우리는 나사로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그리고 죽었을 때, 나사로 본인이나 가족들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요?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붙들고 울었던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이런 일을 당한다면, 당연히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결과적으로는 복음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그 일을 경험한 나사로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요. 복음은 그렇게 쉽게 전해지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요 12: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의 시련은 병들고, 죽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 죽었다 살아났는데, 다시 죽음의 위협을 받습니다.

■ 복음이 전해지지 위해서, 나사로는 어려움을 또다시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겨 낼 때, 주님을 믿게 하는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1) 이 타이밍에 나사로는 예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너무 하시네요. 한번 죽은 것으로 부족합니까?” 할 수 있었죠.

2) 아니면, 자기 자신을 보면서,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그만 하고 싶다. 나도 너무 힘들다” 할 수도 있었죠.


그러나 나사로는 꿋꿋이 견뎠습니다.

최고 고위층이 자기를 죽이려는 위험도 견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견뎠을 때,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바울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선교하다가, 돌팔매를 당했습니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났는데요. 

그런데 우리는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믿음을 지키라 했습니다.


만약, 평안한 인생이 최고라면, 예수님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바울도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환호 소리도 기뻐하셨지만, 고난도 감당하셨습니다.

바울도 고난과 조롱과 배척을 이겨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으며 살잖아요?

예수님 믿을 때도, 교회에 헌신할 때도, 어려움이 닥칩니다. 

이유를 모를 때도 있고, 앞날이 안보일 때도, 있습니다.

● 나사로도 자기가 병들고, 죽을 때, 이유를 알고,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 잖아요?

● “나는 지금 거룩한 일을 위해 죽는다. 3일 뒤면 살아난다.” 하면서, 죽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주님이 그것을 사용하실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견디는 것도,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려움 중에 찾아 오시고, 그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도 바로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죠.

우리가 헌신한다고, 어려움을 견딘다고, 누가 박수쳐 줍니까?

● 아니요. 사람들은 박수 안쳐 줍니다. 바보스럽다고 조롱합니다.

● 그러나 주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려움에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께 집중해야겠습니다.

그러면, 고난 뒤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 복음을 위해, 내 사명을 감당하는 것,

● 교회를 위해, 내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

● 흔들리지 말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저도 나사로같이 사용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III. 복음을 위한 일꾼

“나사로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했습니다(요 12:11). 

나사로의 희생과 충성 때문에, 그런 나사로로 인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나사로는 복음의 통로로 사용되었습니다.


저도 제가 겪는 삶과 어려움을 통해, 이런 일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 나 때문에 예수 믿었다, 

● 나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 

● 나 때문에 신앙이 성숙해 졌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길 소원합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교회에도 주님의 몸을 위해 자신이 사용되기 원하는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치기 원하고, 희생하기 원하는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저도 예수님을 위한 일꾼, 복음을 위한 일꾼으로 사용되기 원합니다.

주여, 저를 이 땅의 나사로로 사용해 주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_zaOmjIB6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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