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23 요 16-18장, “18장 베드로의 부인” > 묵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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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편지

10/30/23 요 16-18장, “18장 베드로의 부인” Publish on October 31,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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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8회 작성일 23-10-3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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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PC 식구 여러분,  

오늘은 요 18장을 묵상하겠습니다.


오늘과 내일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십자가에서 사형되시는 장면입니다.

(물론 그 뒤에는 부활장면이 이어집니다.)

18장은 체포되시고, 심문받으시고, 사형을 언도받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1.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서

전체적인 이해를 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힌 후의 사건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 니다.

1) 겟세마네 동산에서 군병들에게 체포되셨습니다.

2) 안나스(전직 대제사장)에게 심문받으셨습니다.  

3) 가야바(현직 대제사장) 집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4) 빌라도(총독)에게 심문받으셨습니다.

5) 헤롯(갈릴리 분봉왕)에게 심문받으셨습니다. 

6)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졌고, 십자가 형을 언도받으셨습니다.

7) 군병들에게 고문과 수모를 당한 후에,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이동하셨습니다.

8)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2. 베드로의 3번 부인

오늘은 이 가운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 끌려가실 때,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요한)가 멀찍이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놀라 도망갔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것은 훌륭한 점입니다.

아직 새벽이어서 추웠고, 사람들이 마당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한 여자가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떠들었습니다.

(요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 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놀란 베드로는 “아니다”라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사람들의 추측은 집요했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고(마 26:71),

어떤 사람은 갈릴리 사투리를 쓰는 것이 증거라고 하기도 했습니다(마 26:73).

더구나 그 무리 중에 베드로가 귀를 베었던 말고의 친척도 있었습니다.

(요 18: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쯤 되니, 베드로는 상당히 당황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벗어나려 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맹세까지 했습니다.

(막 14: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그때 마침 닭이 울었습니다. 

(요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눅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와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이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셨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입 니다.

더구나 부인하는 장면을 직접 들킨 것입니다.

베드로는 견딜 수가 없었고, 밖으로 뛰쳐나가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 날 밤, 베드로를 바라보셨던 예수님의 눈빛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원망의 눈빛이었을까요? 

책망하는 눈빛이었을까요? 

절망하는 눈빛이었을까요?

여기에서 “보시니”하는 단어를 원어로 살펴보면, 계속 응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빛을 의미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여전히 관심과 애정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지난 3년을 함께 하는 동안 늘 보여주셨던 그 관심과 애정의 눈빛이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평소와 다름없는 사랑의 눈빛을 보여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저를 바라보고 계실 텐데요.

저도 삶에서 생각이나 행동으로 주님을 부인할 때도 있고, 멀리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주님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으신다는 것이 제게 큰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줍니다.

나의 주님, 끝없이 사랑해 주시는 주님의 눈빛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3. 베드로의 울음

(요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는 한때, “주는 그리스도시다”고 고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부인한 정도도 아니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 번이 나 예수님을 부인했고, 예수님과 시선도 마주쳤습니다.

최악의 상황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었고, 견딜 수 없도록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닭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자신의 비열과 겁약과 무기력을 발견했고, 수치와 회한으로 통곡했습니다.

요한은 닭이 울었다는 것만 표현하고, 베드로의 울음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은 마태/마가/누가복음이 쓰인 뒤에 마지막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공관복음에 베드로의 통곡을 말했기 때문에,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 것일까요? 

제 입장에서는 침묵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장면은 가장 비참한 장면인 동시에, 격려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언제든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정도의 큰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정도의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항상 우리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들은 종탑에 십자가를 달곤 하는데요.

유럽 교회 중에는 종탑에 수탉이 달려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종교개혁시대에 철저한 개혁을 위해 십자가 대신에 닭 모양 장식을 한 것입니다.

바로 새벽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회개했던 베드로를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그 밤에 베드로는 통곡했고, 나중에 베드로가 갈릴리로 돌아갔는데요. 

베드로는 그 통곡에서 어떻게 회복되었을까요?

주님이 그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우선, 마가 다락방에 숨어 있을 때, 제자들에게 찾아가셨고요.

베드로가 갈릴리로 돌아갔을 때도 갈릴리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3번이나 반복해서 “네가 나를 사랑하냐?”고 질문하는 대화를 나누셨고, 결국 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실수할 때가 있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주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열기만 하면, 주님이 우리를 받아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아니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을 두드려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오늘도 연약한 저는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제 입술로 범죄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찾아가셨듯이, 저에게도 찾아와 주십시오.

그리고 제 손을 꼭 잡고 일으켜 주시기 원합니다.

회복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hrb6a7EZ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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